증권거래소 노조, 386 여권인사 감사 내정설에 파업 결의

  • 입력 2006년 7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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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인사 저지”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과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노조 간부들이 21일 청와대 근처에서 ‘청와대 밀실·보은 인사 총력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보은인사 저지”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과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노조 간부들이 21일 청와대 근처에서 ‘청와대 밀실·보은 인사 총력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5·31지방선거에서 여당 서울시장 캠프의 참모로 일했던 386 운동권 출신 인사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상임감사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자 증권선물거래소 노동조합이 이를 ‘밀실 보은(報恩) 인사’로 규정하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거래소 노조는 “21일 조합원 찬반 투표 결과 투표율 91.9%, 찬성 82.2%로 청와대와 경영진이 낙하산 감사 선임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면 이를 대체할 인력이 사실상 없어 주식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거래소 상임감사는 24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25일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거래소 감사 선임 둘러싼 갈등

현재 거래소 감사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공인회계사 김영환(42) 씨는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정책팀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386 운동권 출신으로 노동 운동 경험이 있으며 여당의 젊은 국회의원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소 노조에 따르면 김 씨 측은 감사 선임이 진행 중이던 7일 노조에 전화를 해와 감사 내정 사실을 알린 뒤 협조를 요청했다.

노조는 “아직 후보추천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소 팀장급 경력밖에 없는 40대 초반의 회계사가 청와대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거래소 감사가 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강경 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거래소 노조 측에 내정됐다고 말한 것은 아니며, 노조가 왜 외부 인사의 감사 선임을 반대하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거래소 감사 자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몇몇 지인(知人)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런 관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씨는 이 지인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높아지는 총파업 가능성

현재 김 씨는 후보추천위원회에 올라간 5명 가운데 1명으로 알려져 있다. 증권계에 따르면 김 씨는 24일 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2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도 진통이 예상된다.

거래소는 주총에서 감사를 확정할 계획인데 노조는 주총 자체를 개최하지 못하도록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래소는 “주총 봉쇄 및 파업 등에 따른 모든 손실에 대해 노조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주총 강행을 예고했다.

이정환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은 “본부별로 시장 운용에 필요한 필수 요원들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총파업을 하더라도 주식 거래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용국 거래소 노조위원장은 “노조는 파국을 원하지 않지만 청와대와 경영진이 무원칙한 보은 인사를 강행하면 총파업과 그에 따른 주식 거래 중단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정권 후반기 ‘공기업 감사’ 나눠먹기 심화▼

올해 5월 정부 관료 출신인 A 씨는 3년 임기가 보장된 한 정부 산하기관의 감사직에서 1년여 만에 물러났다. 대신 민간 금융회사의 대표이사에 최근 새 둥지를 틀었다.

A 씨의 지인은 “하는 일 없이 거액의 월급 받기가 미안해서 그만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위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라는 직원들의 눈총도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A 씨의 사례에서 보듯 공기업의 감사(監事)는 업무 부담이 크지 않고 연봉이 높은 이른바 ‘꽃 보직’으로 불린다. 심지어 기관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감사도 꽤 있다.

정부가 공기업 감사 자리에 여권(與圈) 인사들을 잇달아 보내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은 적지 않았지만 현 정부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낙하산 인사’

한국언론재단 기사검색시스템인 ‘카인즈(KINDS)’에서 ‘낙하산 인사’를 검색하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근까지 무려 377건의 기사와 자료가 뜬다. 대부분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언론기사, 국회 보고서, 시민단체 성명 등이다. 정부는 최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신임 감사에 최동규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사무처장을, 한국수출보험공사 감사에 임좌순 한국정치문화연구원장을 임명했다. 임 신임감사는 지난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남 아산 재·보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물.

최근 들어 정부 산하기관의 정치인 출신 낙하산 인사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정권 후반기를 앞두고 ‘자기 몫을 챙기려는 욕구’가 상당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부는 기관장보다 연봉 높아

감사는 전문성과 독립성이 필수 요건이지만 현 정부 들어 정부산하기관에 입성한 정치인 출신 감사를 보면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관련 분야 경험이 거의 없는 인사가 건설 전기 항공 등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공기업의 감사로 임명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출자기관과 정부출연기관에 현 정부 들어 취임한 28명의 감사 중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인사는 거의 없다.

감사의 연봉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기관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감사도 적지 않다.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05년 결산자료 기준으로 정부출자기관에서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공사, 한국농촌공사, 한국관광공사, 대한주택공사 등 5개 기관의 감사 연봉이 기관장보다 많다. 한국도로공사 감사의 연봉은 1억2500만 원으로 기관장 연봉(판공비와 업무추진비 제외) 8450만 원의 1.5배가량이다.

이 중 4개 기관의 감사가 정치인 출신이다.

정부출자, 출연, 재출자기관 등 정부산하기관 전체 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2005년 기준 1억2205만 원인 데 비해 감사는 1억3146만 원이다.

○정부 산하기관 반발 본격화

최근 정치인 출신 감사 또는 기관장 선임을 앞두고 있는 정부산하기관 직원들의 분위기는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정부 산하기관 곳곳에서 낙하산 인사 반대를 명분으로 한 실력행사에 나서거나 이를 계획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산업·기업은행 등 10개 국책 금융기관 노조는 지난달 8일 성명을 통해 “낙하산 인사는 선진 금융경제로의 진입을 막는 것으로 관련 노조들이 연대해 대(對)정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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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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