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보석 신청을 허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김동오 부장판사의 말이다. 그는 “고민이 많았다”며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고 그랬다”고 말했다.
▽“불구속 재판 원칙에 따른 방어권 보장 조치”=김 부장판사는 법원이 지난 10여 년간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재판 원칙을 추진해 온 노력을 따랐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경영공백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고려됐다고 했다.
그는 “정 회장의 건강상태는 고려 대상이긴 했지만 보석 허가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면서 “보석 결정이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낸 탄원서에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이 대기업 회장이라고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혐의가 인정되면 엄정하게 책임 물을 것”=정 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보석 결정만으로 1심 판결 선고에서 집행유예형과 같은 ‘선처’를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이 많다.
김 부장판사는 보석 결정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재판 결과 혐의가 인정되면 피고인에게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 기일을 연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 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인정한 비자금 조성 혐의가 인정될 경우 실형 선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재판장도 유죄 부분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것이 정 회장 형량을 정하는 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해 말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의 피고인들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을 비판하는 등 취임 이후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의지를 밝힌 것도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될지,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될지,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법정구속이 안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정 회장, 2주가량 병원 치료 받을 듯=정 회장이 석방된 뒤 입원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심장내과 교수는 “앞으로 2주 정도 정밀검사와 함께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협심증과 관상동맥경화협착증, 고혈압에다 심장막에 물이 고여 있고 왼쪽 폐에 혹이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정 교수는 “심장병은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지만 정 회장이 최근 흉통을 자주 호소하는 등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며 “정 회장이 고령이고 고혈압을 30년 이상 앓아 온 데다 담배를 많이 피운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입원한 병실은 병원 20층의 VIP병실 가운데 하나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이 이용했다. 하루 입원비는 약 8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채동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정 회장 보석 허가와 관련해 “필요하면 정 회장을 소환해 조사할 수 있지만 당장 소환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다”며 “비자금 용처 수사가 일부 남아 있지만 (정 회장의 석방으로) 수사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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