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치광고, 與는 이미지·野는 이슈로 승부했다

입력 2005-11-23 03:05수정 2009-10-0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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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

1963년 대통령 선거 당시 기호 3번 박정희 후보가 일간지에 낸 광고 문구다.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김춘식(金春植·41) 교수는 최근 역대 대선 당시 신문 및 TV 광고를 분석한 책 ‘대통령 선거와 정치광고’를 펴냈다. 1952∼2002년 11번의 대선에 등장한 신문광고 434건과 1992년부터 허용된 TV 광고 30편이 분석 대상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여당 후보는 이미지 광고를, 야당 후보는 이슈 광고를 많이 내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초기의 대선 광고에서는 대권주자의 리더십이 강조됐지만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후보의 능력과 도덕성이 더 강조되는 방향으로 광고가 제작됐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1963년 민정 이양 선언 후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 대통령은 주로 일꾼과 농민의 아들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는 ‘중농 정책을 갱신(更新) 강화한다’는 타이틀 아래 농민의 아들, 성실한 일꾼임을 부각했다.

1971년 김대중 후보와 맞대결한 선거에서는 두 차례의 경제개발계획 성과를 부각하며 ‘말꾼’과 ‘일꾼’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호소했다.

이 같은 농민 이미지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1992년 대선에서 사용했다. 정 회장은 경제개발기를 주도한 보수적인 중장년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습니다’라는 타이틀 아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 개발의 주역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1971, 87, 92, 97년에 4번의 대선을 치른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후보로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공격형 광고를 주로 이용했다.

1971년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치자’는 구호 아래 제3공화국의 부정부패를 비난했다. 1992년엔 당시 유행했던 ‘한국병’의 책임자로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지목했으며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유발한 여당 심판론을 집중 부각했다.

그러나 투사의 과격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따뜻한 감수성과 여성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도 했다. 그는 1987년엔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 대문에 자신과 이희호 여사 문패가 나란히 걸려 있는 사진을 ‘(이는) 그가 얼마나 여성을 존중하는가를 말하고 있읍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노무현 대통령은 6편의 TV 광고를 모두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상대였던 이회창 후보가 상대를 공격하는 부정형 광고를 많이 활용한 것과 비교되는 점.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이른바 ‘눈물 광고’나 아무것도 없는 백지 아래 조그만 글씨로 효순 미선 양을 위한 촛불시위를 지원한다는 문구만 있는 파격적 인 형식의 광고도 선보였다.

한편 이회창 후보는 TV 광고의 경우 1997년 5편 중 2편을, 2002년 8편 중 3편을 상대방에 대한 공격에 초점을 맞췄다. 1997년에는 이인제 후보의 경선 번복을 비판했고 2002년엔 민주당의 실정을 집중 성토했다.

이 후보는 신문 광고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을 반박하기 위해 노 후보의 입만 부각시킨 사진과 함께 ‘불안한 후보, 위험한 서울’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김 교수는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타 후보에 비해 ‘세련된’ 광고를 내놓았다고 분석했다.

노 후보는 안정을 강조하는 이미지와 이슈 광고를 적절히 배합했으며 ‘동회에, 세무서에, 경찰서에 기분 좋게 드나들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리적 기법을 사용했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1987년 ‘16일은 군정 최후의 날’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등 구호성 광고를 주로 선보였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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