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신년좌담]닭띠 기업인 3인의 경제 희망찾기 좌담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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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해에 태어난 ‘띠동갑’ 기업인 3인이 만나 기업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홍국 하림 회장, 한진호 프로소닉 사장, 이청종 후이즈 사장. 원대연 기자
닭의 해에 태어난 ‘띠동갑’ 기업인 3인이 만나 기업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홍국 하림 회장, 한진호 프로소닉 사장, 이청종 후이즈 사장. 원대연 기자
《닭의 해인 을유년을 맞아 본보는 ‘닭띠 기업인’ 3명을 초청해 한국 경제와 기업경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절대로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의 사회는 본보 경제부 이병기 기자가 맡았다.》

▽사회=먼저 광복의 해인 1945년에 태어나 2005년에 회갑을 맞는 한진호 사장님이 ‘해방둥이 기업인’으로서 소회를 말씀해 주시죠.

▽한진호 사장=해방둥이라는 호칭에는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저 자신도 ‘해방둥이들이 한국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제 생전에 한국이 당당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통일을 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김홍국 회장=한 사장님은 어떻게 해서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까.

▽한진호=저희 집안은 대대로 엔지니어 집안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서 자동차 정비공장을 했죠.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공대 금속과에서 재료공학 등을 배웠죠. 그러다 대학 졸업 뒤 창업했습니다. 창업의 꿈을 갖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이 생겨나던 사회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기술 중심의 사업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김홍국=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가에 놀러갔다 외할머니에게 얻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35년 전이죠. 당시 한 마리에 7원하던 병아리를 270원 하는 닭으로 키워냈는데 이걸로 또 닭을 100마리 샀어요. 18세 때 사업자등록을 해서 계속해서 닭 키우는 일을 하며 한 우물을 판 것이 오늘의 하림이 됐습니다.

▽한진호=고등학생 때부터 기업을 하셨으니 기업인으로서는 김 회장이 저보다 선배네요(웃음).

▽이청종 사장=저는 건설회사에서 일하면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고 ‘땅’이라는 개념으로 인터넷을 생각해 봤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주소명인 ‘도메인’이라는 말은 ‘영토’라는 뜻입니다. 이 땅을 선점하면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 주소를 사고파는 도메인 회사를 차렸습니다.

▽사회=2년째 심각한 내수불황으로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올해 세 분이 일하시는 분야의 사업 전망은 어떻습니까.

▽김홍국=2003년 대형 화재로 동양 최대 규모였던 전북 도계공장이 몽땅 타버렸습니다. 최초로 적자를 낸 해가 됐죠. 거래처를 잃지 않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비싼 값으로 닭을 매입해 내다 팔면서 손해가 막심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독감 파동까지 몰려왔습니다. 고생이 심했죠. 하지만 지금은 최신 설비를 갖춘 새 공장을 짓게 되면서 생산성이 향상됐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이청종=다행히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도메인 관리 업체라는 특성상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올해는 해외에 진출한 사업이 회사의 성장 여부를 결정할 것 같습니다.

▽한진호=저희 회사는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었지만 일찍 구조조정을 끝내고 첨단기술 확보에 성공해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사회=한국 경제가 성장의 활력을 잃고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많습니다. 기업인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진호=한두 해 경제사정이 안 좋을 수는 있습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사회가 활력을 잃어간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대기업에 입사한 것 자체가 개인에게 자부심이었습니다. 스스로 ‘산업역군’이 됐다는 느낌이 있었죠. 이건 사무직과 생산직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던 자부심이었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국가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고 자신이 이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에는 이런 분위기가 없습니다.

▽이청종=요즘 20대 청년들은 취직이 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보다 사회, 민족, 인류에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취업할지 생각하는 데 매몰돼 있습니다.

▽김홍국=21세기에 걸맞은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데 오히려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꾸 퇴행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닭을 기르고 팔던 때 부모님은 저를 말렸습니다. 닭 팔아서 얼마나 성공하겠느냐, 공부나 하라는 핀잔이셨죠. 하지만 지금 저는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며 새로운 발상을 해 내야 하는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가 왔는데 부모 세대나 젊은이들은 현실에 너무 안주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청종=요즘 젊은 세대는 ‘생존’ 이외의 생각을 잘 못합니다. 취직해서 돈 벌고 사는 것 이외에 꿈이 없습니다. 이는 일본에 출장을 가면 일본에서도 똑같이 느끼는 내용입니다. 화이트칼라 생활을 해봐야 집 한 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얽매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홍국=젊은이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해 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도 큽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기가 죽은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회=우리 사회가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뭐라고 보십니까.

▽김홍국=우리 사회가 요즘 필요한 것은 ‘유연성’입니다. 기업에 교과서적인 경영을 요구하면 기업은 살아남기 힘듭니다. 정치권이나 사회가 2만 달러 국가에나 맞는 관행을 한국 기업에 요구하면 기업인은 도전과 모험 대신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경영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경제의 활력이 줄어드는 것이죠. 본질적으로 기업인은 리스크를 안고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사회가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고 기업을 밀어주기는커녕 경직된 논리로 기업을 재단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활력을 잃게 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시장경제와 기업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진호=저는 끊임없는 변화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을 살피고 시기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는 것부터 때로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과감히 부실을 정리하는 것까지 냉혹하고 단호한 변화가 기업에 요구된다고 봅니다. 개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세대간 단절현상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기업이란 한 세대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선배세대의 경험을 후대의 기업에 전달시켜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성장해 왔던 장점과 더 이상 성장을 끌어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겪는 고민이 후대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청종=맞습니다. 외국에 출장을 다녀보면 서점마다 훌륭한 기업 사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 기업 도서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노하우가 정리된 책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선배 기업인들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가 잘 정리돼 후배들이 이를 깊이 공부하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사회=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닭의 해에 ‘닭띠 기업인’ 세 분의 사업이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좌담 참석자▼

○한진호 프로소닉 사장(60)

△인하대 금속재료공학과

△영남대 시스템공학과 대학원

△초음파기술 사장

△석탑산업훈장 수상

○김홍국 하림 회장(48)

△이리농림고

△원광대 명예 경제학 박사

△한국계육협회 회장(1994∼2002)

△신지식인 선정(1999)

○이청종 후이즈 사장(36)

△연세대 건축공학과

△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기획이사

△한국IR센터 대표이사

△예스닉 대표이사

사회=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정리=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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