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투입 부실기업주 ‘회사돈 빼돌리기’ 백태

  • 입력 2004년 5월 28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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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망해도 총수는 산다.’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부실기업의 기업주들이 회사 돈을 빼돌려 호화판 생활을 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재산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이 줄줄 샌 것이다.

▽스님 통해 재산 은닉=김성필 전 성원토건그룹 회장(50)은 1998년 7월 회사 부도가 임박하자 승려 김모씨(49)를 통해 국내 유명 사찰 명의의 계좌(이름만 빌렸을 뿐 사찰과는 무관함)를 만들어 회사 돈 47억5000만원을 송금했다. 시주금으로 가장하기 위한 것으로 승려 김씨는 모 사찰 명의의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승려 김씨는 또 사찰 명의 계좌 30여개를 이용해 이 돈을 2억원씩 나눠 입출금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돈세탁한 뒤 김 전 회장에게 되돌려줬다. 이런 혐의로 승려 김씨도 구속됐다.

이 외에도 김 전 회장은 K스님과 또 다른 사찰 주지 등의 이름을 빌려 회사를 설립해 버스 터미널(250억원), 주차장(80억원) 등 33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또 회사 부도 후 서울 성북동의 집 2채와 대지(시가 204억원), 부인과 여동생 명의로 된 아파트 4채, 점포 2개, 연립주택 1개동(19가구)도 사찰 명의로 옮겨놓기도 했다.

▽부실기업 회장의 호화판 도피 생활=김 전 회장의 은신처는 쇠창살이 촘촘히 박힌 담장 위에 16대의 무인감시카메라가 작동되는 대지 703평의 서울 성북동 소재 고급 주택. 2000년 12월부터 도피생활을 시작한 김 전 회장은 한곳에 2개월 이상 머물지 않고 전국을 전전하다 2004년 2월 이 집에서 숨어 살았다.

이 집의 담 너머에는 김씨의 동생이 사는 다른 호화저택도 있었다. 두 집 모두 승려 김씨의 도움으로 사찰 명의로 돼 있었고 ‘연화원’ ‘성불사’ 등의 엉터리 문패도 달려 있었다.

2개월의 추적 끝에 이곳을 급습한 검찰은 집 내부의 호화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0평이 넘는 지하실엔 헬스클럽을 겸한 실내 골프연습장이 조성돼 있고, 창고에는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옷 수백벌과 포장도 뜯지 않은 이탈리아제 수제 구두, 그림 수십점이 빼곡히 차 있었다. 다른 한쪽 구석엔 똑같은 모양의 007가방이 10여개 쌓여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곳에 비자금을 전달할 때 사용하려 했던 것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과 가족들은 체어맨 승용차 1대 등 4대의 승용차를 굴리면서 운전사, 조경사, 경비원, 도우미 아줌마 등 고용원 5명에게 월급으로만 매달 81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건설 전 회장의 경우=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60)은 1998년 4월 이혼한 전처에게 회사 돈으로 위자료 24억원을 지급하고, 대신 개인 소유의 서울 장충동 부동산(당시 시가 17억원)을 24억원에 회사에 팔았다.

이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로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어 바닥을 치던 때. 더구나 당시 동아건설은 금융기관의 융자로 버텨나가는 최악의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검찰은 “그런데도 그룹 총수인 최 전 회장은 회사에 자신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팔았다”고 밝혔다.

최 전 회장은 또 1994년 1월부터 1998년 4월까지 자신과 처, 모친의 운전사, 경비원, 보일러 기사 등 19명의 급여 명목으로 13억원을 회사에서 가져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최 전 회장은 직원 급여 및 공사장 인건비 등을 부풀려 계산하는 방법으로 한번에 2억∼5억원씩 비자금을 조성해 집무실 캐비닛에 보관해놓고 정·관계 로비자금이나 임직원 격려비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회사 돈 빼돌려 호화주택 신축=전윤수 성원그룹 회장(55)은 1999년 4월 회사 부도 당일에도 계열사 소유 부동산을 판 14억3000만원을 자녀 유학비와 주택부지 매입대금으로 지출했다.

전 회장은 빼돌린 회사 돈으로 고급 주택가인 서울 성북동에 땅(530평)을 사 건평 180평 규모의 호화주택(시가 35억원)을 짓고, 회사 고문 법무사의 명의로 등기이전을 했다.

전 회장은 또 아파트 공사대금을 부풀려 계산하는 방식으로 비자금 1억2000만원을 조성해 개인집을 짓는데 썼으며, 1997∼1999년 회사에 근무한 적이 없는 부인을 성원산업개발과 성원공영의 임원으로 허위 등재해 1억2396만원을 급여명목으로 챙기기조차 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공적자금 투입된 기업 범죄 일람표
기업(부실 채무액)주요 피의자범죄 요지
성원토건그룹(8069억원)김성필 회장김성환 감사-한길종금 인수 후 4200억원 부당 대출-회사자금 207억원 횡령
동아그룹(1조5265억원)최원석 회장유성용 사장조원규 부사장-6000억원 사기대출-회사자금 184억 횡령-사적 고용인 급여 13억원 부당 지급
성원그룹(3조361억원)전윤수 회장강희운 전무-4467억원 사기 대출-전윤수 회장 소유 35억원 주택 은닉
한신공영(3600억원)김태형 회장최종욱 전무-1865억원 사기 대출-회사자금 90억원 횡령
충남방적(1200억원)이준호 대표이사이광호 전무이사-1200억원 사기대출-11억원 계열사 부당지원
센추리원하연 대표이사-450억원 사기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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