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엔진 정지된 상태… 결국 선장에게 키를 맡길것”

  • 입력 2004년 5월 13일 18시 28분


코멘트
“지금은 배(한국경제)가 무풍(無風)지대에 갇혀 꼼짝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선장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인 이헌재(李憲宰·사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이례적으로 자신의 입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공개적으로 나타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이 부총리가 특히 총선 후 ‘분배와 개혁’을 중시하는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등에 밀리는 듯 보였던 점을 감안할 때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현재 우리 배는 무풍지대에 갇혀 돛을 올려도 움직이지 않고 엔진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배가 꿈쩍하지 않아서 결국 선장(이 부총리)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배가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엔진도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이 부총리가 집권세력 내의 이른바 ‘개혁론자’들에게 포위돼 흔들리고 있다”는 일부 관측에 대해 “나는 쉬는 동안 내공이 생겨서 그런지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현 경제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정부는 상황을 안이하게 보지도 않고 확대해서 해석하지도 않는다”며 “때에 따라서는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안심시키려 노력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둘러싼 혼선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옴에 따라 정책방향의 조율을 잡을 수 있도록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을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정부 안팎에서는 ‘개혁론자’들이 지나치게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목소리를 높일 경우 이 부총리가 ‘자신을 던지는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 바 있다.

그는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일상적인 일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장기적인 정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해 문제였다”며 “내일(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면 중요한 현안들의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