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삼성PDP 수입 전격 중단 ‘韓-日 통상마찰 비화 조짐’

  • 입력 2004년 4월 21일 18시 26분


일본 도쿄세관이 삼성SDI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제품의 통관을 전면 보류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과 관련한 한국과 일본의 특허분쟁이 국가간 통상마찰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1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NHK방송 등에 따르면 도쿄세관은 현지 업체인 후지쓰가 제기한 삼성 PDP 수입금지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부터 관련 제품의 통관을 보류시켰다.

일본 세관이 제조기술과 관련해 수입을 중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세관은 앞으로 특허소송과 별도로 해당 제품의 권리침해 여부에 대한 심사를 하게 되며 권리침해가 인정되면 수입품은 반송되거나 폐기·몰수된다.

후지쓰는 이달 6일 일본과 미국 법원에 특허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수입 및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후지쓰는 소장에서 삼성SDI가 PDP의 밝기(휘도)를 높이고 수명을 늘리는 발광(發光) 구조에 관한 기술 등 10여건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세계 PDP 시장은 작년 3·4분기(7∼9월)까지 후지쓰가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4·4분기(10∼12월)부터 삼성이 1위에 올라섰다.

한편 삼성SDI는 일본 세관의 통관 보류 조치가 수출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 직수출하는 PDP는 월 3000여대로 전체 수출물량의 3∼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단행된 것으로 보고 세계무역기구(WTO)에 문제를 제기할 것을 검토하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SDI는 “최종 수입금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세관이 일방적으로 통관을 보류한 것은 국제관례를 벗어난 것”이라며 “세관이 적용한 관세정률법도 모조·모방품의 수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산업자원부도 국제 특허분쟁을 종합 관리하는 상설 전문기구를 전자산업진흥회에 설치해 관련 정보 수집과 대응방법 연구 및 교육, 변리사 등 전문인력 지원 등을 제공키로 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日 ‘특허 통한 압박’ 신호탄

일본 후지쓰와 삼성SDI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을 둘러싼 특허권 분쟁은 일본이 주도하는 특허 공세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우광 수석연구원은 “이번 특허분쟁은 반도체와 LCD 부문에서 한국에 주도권을 내준 일본이 특허를 통해 한국 기업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이 첫 타깃이지만 머지않아 상당수 한국 기업이 특허 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일본 정부도 첨단기술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을 지적자산 국가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2002년 11월 지적재산기본법을 제정했다. 지난해 3월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하고 7월부터 지적재산 추진계획을 만들어 기업들이 특허를 통해 수익을 얻고 기술을 보호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일본의 공세는 확보하고 있는 원천기술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한국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지적재산기본법 자체가 한국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견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일본의 전현직 기술자들을 주말에 불러들여 기술 지도를 받는 것도 힘들어졌다. 캐넌과 샤프 등 선도 기술업체들은 아예 신소재나 신공법에 대해 특허를 신청하지 않는다. 모방을 아예 원천봉쇄하는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 전략이다.

캐넌은 기계업체를 통해 한국이나 중국으로 기술이 새나간다고 판단해 회사에서 사용하는 핵심 제조 장비를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그나마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은 특허분쟁을 통해 쌓은 노하우가 있고 일본 기업과 주고받을 기술이라도 있지만 중견그룹이나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이다. 정부도 위기감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정준석(鄭俊石) 생활산업국장은 “전자산업진흥회에 특허 분쟁과 관련한 상설 전문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며 올해 안에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별 업체들이 특허 분쟁에 대처하기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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