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지갑 열어라”…소비시장 40대로 급속 이동

  • 입력 2004년 4월 15일 17시 40분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나면 중년을 넘긴 듯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훔치며 일어선다. 최근 한국 영화 관객동원 신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끝난 뒤의 장면이다.

영화를 제작한 쇼박스는 “중장년층을 감안해 기획된 영화라 시사회에도 삼성전자와 국민은행의 60, 70대 고객을 초청했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상품들이 앞 다퉈 나오고 있다. 한동안 소비시장이 10대 주도로 이뤄지다 이제는 중장년층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그래도 구매력 있는 중장년층이 ‘소중해지는’ 추세다.

▽중장년, 자신을 위해 쓴다=탈모관리 회사인 스벤슨은 매년 10% 선을 유지하던 40, 50대 고객이 올해 들어 19.8%로 뛰었다고 밝혔다. 예전엔 30대 고객이 가장 많았다. 체형관리회사인 마리프랑스도 마찬가지 추세.

이영희 스벤슨 총괄본부장은 “관리비용이 400만원 선으로 고가인 데다 외모에 신경 쓰는 중장년층이 늘어난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화장품업계와 식품업계에서 인삼 및 한방을 성분으로 한 제품을 경쟁적으로 개발하면서 제품 값을 크게 올린 것도 중장년층을 겨냥한 것.

농심에서 최근 내놓은 ‘홍삼수’는 2L에 4000원이다. 농심은 홍삼 인삼에 대한 욕구가 있는 40, 50대가 자주 사 마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J뉴트라는 1월에 내놓은 인삼음료 ‘한뿌리’가 올해 1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 매니저 김태열씨는 “120mL 한 병에 295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의 ‘고려홍삼’, 남양유업의 ‘백년산삼’, 동원의 ‘상쾌한아침 홍삼’ 등도 주로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

한방 화장품도 있다. 태평양은 ‘설화수’를 7년 만에 처음 리뉴얼하며 40대 이상의 저명인사를 중심으로 한 ‘마니아클럽’을 강화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의 ‘더후’, 코리아나의 ‘자인’, 한국화장품의 ‘산심’ 등도 주 고객층이 중장년 여성이다.

성인병을 예방한다는 건강 베이커리류도 인기다. 프라자호텔은 토마토빵, 와인빵, 검은콩빵을, 롯데호텔은 누에빵, 키토산빵을 내놓았다.

공연정보 및 예매 인터넷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뮤지컬 ‘맘마미아’를 본 관객 가운데 30%가 중장년층이다.

▽머추리얼리즘(Maturialism)=롯데백화점이 최근 ‘매출 상위 1% 고객’을 분석한 결과 올 1·4분기(1∼3월) 40∼60대 고객 수는 지난해 동기보다 6.1%포인트, 구매금액은 6.0%포인트 늘어났다.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 역시 회당 구매액인 객단가를 조사해 보니 평균이 15만원이었는데 40, 50대는 24만원이었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선임연구원은 “요즘 중장년층은 자녀들을 위한 소비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가꾸는 소비를 많이 하고 있다”며 “중장년층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머추리얼리즘으로 불릴 만하다”고 말했다. 머추리얼리즘이란 젊은층이 주도하는 기존 소비시장에 만족하지 않는 중년층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가꾸기 위한 상품을 찾는 흐름을 일컫는 말.

박 연구원은 독일 지멘스가 고급 가정용 다리미를, 프랑스의 세브가 가정용 맥주 제조기를 내놓아 중장년층의 소비를 이끌어낸 것도 같은 개념이라고 소개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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