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주주 비리 판친다

  • 입력 2004년 2월 11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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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매매거래정지. 정지 사유는 대규모 회사자금 피 횡령설 및 자금악화설. 이에 대한 조회공시도 요구함. 조회공시 기한은 12일 오후.’

코스닥증권시장이 11일 비젼텔레콤과 동서정보기술 2개 회사에 대해 조치한 내용이다. 전날 엔플렉스와 한신코퍼레이션이 똑같은 이유로 조회공시를 요구받고 거래가 중단된 지 하루 만이다.

코스닥 등록기업 대주주들의 자금 횡령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실로 확인되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연달아 금고 구멍 뚫린 코스닥기업들=11일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올해 9개 등록업체가 대주주의 횡령 및 자금악화 여부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받았다. 이 가운데 5개사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됐다.

성광엔비텍 대표인 배모씨는 작년 3월 발행한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40억원, 성내동 빌딩 매각대금 27억원, 유상증자대금 19억5000만원 등 모두 106억원의 공금을 유용하거나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9일 회사측은 뒤늦게 배씨를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소하고 자금악화설에 대해서는 “필요한 운영자금이 확보돼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가는 사건 발생 이후 나흘 연속 하한가까지 떨어졌다.

위자드소프트의 최대주주 임모씨는 회사자금 22억원을 횡령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 회사자금 33억원을 담보로 임씨가 대출받은 32억원도 함께 사라졌다는게 회사측 주장.

이 회사 관계자는 또 “작년 말 재무담당이사가 퇴사하면서 회사 통장과 법인 인감이 건네지는 과정에서 며칠 동안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며 “이 사건 때문에 결과적으로 올해 대표이사가 3번이나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회사측은 거래 상대방에게 부당거래 환수 요청 등을 통해 피해액 중 2억6500만원은 일단 돌려받았다.

이 밖에 한빛네트 사장 강모씨는 45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2002년 말 회사를 인수한 뒤 주금 가장납입 방식으로 돈을 빼내고 그 일부를 사채 변제에 사용한 것이 주된 혐의 내용.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흙탕물 시장, 확산되는 모럴 해저드’=증권가에서는 이런 사례가 잇따르는 것에 대해 “코스닥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연초부터 확산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모디아의 주금 허위납입으로 ‘유령주식’이 시장을 돌아다니는 등 새로운 범죄 유형도 발견되는 상황이다.

코스닥 기업이 자금을 유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제3자 유상증자나 편법적인 대주주 자금대여. 계획적으로 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자금만 빼내버리는 경우도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유상증자, 대주주 금전대여가 잦거나 최대주주가 자꾸 바뀌는 기업들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며 투자자들의 주의를 거듭 당부했다.

감독기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부장은 “코스닥시장이 퇴출 기준을 강화해 부실한 기업을 제때 걸러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지수 단위만 부풀려 포장할 것이 아니라 신속히 정화작업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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