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월마트·페덱스, CEO부터 고객중심 실천

  • 입력 2003년 6월 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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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3800만명. 세계 최대의 소매 유통업체인 월마트에서 매주 쇼핑하는 고객 수자다. 남한 인구의 세 배다.

세계 최대의 국제특송 항공사인 페덱스가 매일 배달하는 화물은 평균 310만건. 화물이 배달되는 국가가 210여개국. 소비자 직접 접촉 빈도가 어떤 곳보다 높은 회사다. 이 두 회사가 ‘거대 소비자층’의 신뢰를 얻으면서 살아가는 비결은 뭘까.》

▽창고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최대 회사=미국 아칸소주에 있는 소도시로 인구가 3만명인 벤턴빌의 월마트 본사를 방문했다. 홍보담당자인 애미 와이어트는 “한국 기자가 본사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월마트 본사 건물은 창고를 사무실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최고경영자(CEO)인 리 스콧 등 모든 임원들이 공동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임원 1명당 공간이 3평을 넘지 않았다. 리 스콧은 폴크스바겐의 소형차인 뉴비틀(미국 판매가격 2만3190달러)을 운전사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한다.

월마트의 지난해 총 매출액은 2445억달러(약 293조4000억원). 전 세계에서 매출액 1위 기업이다. ‘짠돌이 경영’의 이유를 물었다. 고객관계 담당인 바버라 브라운 부사장은 “월마트의 철학은 고객에게 1센트라도 싸게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회사의 비용을 한 푼이라도 줄이는 것이 월마트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본사도, CEO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

‘고객 중심’의 원칙이 실제로 월마트 경영철학의 중심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월마트 점포에는 ‘우리는 더 싸게 팝니다(We Sell For Less)’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값싼 물건을 공급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와이어트는 “수천명의 구매담당자는 물건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오늘도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은 왕(王)’, 구호만이 아니다=월마트가 설립된 뒤 대형할인매장으론 처음으로 개장한 본사 근처 로저스에 있는 ‘슈퍼센터 1호점’으로 옮겨 직원들이 고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관찰했다. 우선 눈에 띄었던 것은 고객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눈을 맞춰 인사하고 “필요한 게 없느냐”고 묻는 공손한 태도였다. 동행한 브라운 부사장은 ‘10피트(3m) 규칙’이라고 말했다. 고객들이 10피트 안에 접근하면 월마트 직원들은 반드시 고객의 눈을 보고 먼저 인사해야 한다는 것. 고객이 접수시킨 불만사항은 해가 지기 전에 답신을 줘야 한다거나, 고객이 물건을 찾을 때에는 손으로 가리키는 대신에 반드시 직접 동행해야 한다는 등의 규칙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매주 2회 매장 배치를 바꾸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슈퍼센터 1호점은 최근 주말에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 가족 단위로 쇼핑을 많이 오자 매주 금요일 밤에는 매장 배치를 다시 해서 이들이 필요한 물건을 쉽게 찾도록 하고 있다.

▽페덱스의 ‘똑똑한’ 고객서비스=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그가 근무하는 배송회사가 바로 페덱스(페더럴 익스프레스)다. 미 테네시주 멤피스에 본사가 있는 페덱스가 고객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정보기술(IT)의 적용과 남들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다.

전날 밤에 맡긴 짐(때로는 태평양을 건너서)을 바로 다음날 오전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는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소비자가 자신이 발송한 화물이 현재 어디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배달에 착오가 생기면 고객에게 요금을 돌려주는 제도를 시작한 것도 페덱스였다.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미국에만 16개 콜센터에 3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고객서비스 전략팀 담당 임원인 마이클 피한은 “담당직원이 고객전화를 2초 안에 받을 확률은 90%”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끊임없이 체크해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기본이다. 해외홍보 담당직원인 샐리 대버포트는 “비행기 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24시간 미국 전역에 6대의 비행기를 비상 대기해 놓고 있기 때문에 배달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월마트의 직원들이면 모두가 외우는 구호가 있다. 월마트(Wal-Mart) 철자를 일일이 말한 다음 “누가 최고?(Who is No.1?)"라고 물은 뒤 “언제나! 고객!(The Customer! Always!)”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매장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이들은 마치 ‘열정적인 신도’가 신(神)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객’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화가 된 것이다.

페덱스도 마찬가지다. 주소가 잘못 기재돼 배달이 제대로 안 됐다는 연락을 받고 직원이 주말에 직접 차를 몰아 300km나 떨어진 고객에게 배달해 줬다거나 9·11테러가 발생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24시간 안에 수백t에 이르는 구급약 등을 현장에 배달해 줬다는 등 고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영웅담들이 도처에 많다.

왜 그럴까.

“고객들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월급을 받는 것도, 회사가 매출을 올리는 것도 고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뢰를 잃어 고객들이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끝입니다.”

월마트 ‘슈퍼센터 1호점’의 점포매니저인 매트의 말이다.

벤턴빌·멤피스(미국)=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소비자 신뢰확보는 기업-성장 핵심요건" ▼

대량생산과 대량판매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는 공급자인 기업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다양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제는 그 주도권이 소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맞춤소비’ ‘고객관계관리(CRM)’ 등의 용어가 기업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가능한 기업’이 되느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변수라 할 수 있다.

1999년 브랜드 관련 잡지인 ‘브랜드 위크’에 발표된 로퍼 스타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76%가 가격과 품질이 같다면 구매하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의를 보여주는 브랜드로 바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수치는 6년 전에 실시됐던 같은 조사에 비해 10% 이상 증가했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기업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로 꼽히는 포드는 자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익스플로러에 장착된 파이어스톤 타이어 때문에 잦은 전복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이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익스플로러에 장착된 파이어스톤 타이어가 최소한 271건의 교통사고 사망건수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결국 이에 대한 소송이 제기돼 포드는 플로리다주를 포함해 50개주 검찰에 모두 51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해야 했다.

일본의 미쓰비시는 2000년 6월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대규모 제품수리(리콜)를 하면서도 이 사실을 운수성에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이에 대한 내부고발이 접수되면서 운수성의 조사가 시작됐고 2001년 4월 전직 부사장 등이 리콜정보 은폐혐의로 기소됐다. 이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면서 미쓰비스사는 거액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 사이 주가는 40% 추락했다.

또한 일본의 유가공 기업인 유키지루시 유업은 2000년 6월 발생한 집단식중독사건을 신속히 대처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공정오염으로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된 우유가 생산됐고 이를 마신 1만5000명이 집단식중독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회사는 사건 발발 직후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여기에 2002년 1월에는 자회사인 유키지루시 식품이 수입산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정부기관에 팔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유키지루시 유업은 업계 1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고 주가는 6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기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 직접적으로는 주가가 영향을 받는다. 나아가 기업 수익성이 악화돼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까지 온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매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전 직원에게 소비자의 신뢰를 종교처럼 강조한다. 그만큼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는 주요 관건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소비자경제학

<특별취재팀>

▽팀장=허승호 경제부 차장

▽팀원=김용기 신연수 이강운 공종식 정미경 박중현 김두영

홍석민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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