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현의 선물이야기]잘못된 현실도 인정해야

  • 입력 2003년 3월 2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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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강조하지만 매매의 자신감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 과감히 접는 데서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틀린 것을 인정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매매에 들어간 돈과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믿음이 강해집니다. 틀린 걸 알게 되더라도 좀처럼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웁니다. 매매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포지션이 스톱아웃(stop-out)됐다고 합니다.

매매도 인생과 비슷합니다. 확신이 강하면 투자 금액도 많아지고 포지션도 커집니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게 힘들지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일방통행길에 접어들었는데 반대편에서 엄청나게 큰 화물차가 달려옵니다. 클랙슨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도 번쩍번쩍 켜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화물차는 미동도 하지 않고 속력을 줄이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한번 붙는 겁니다. 이쪽에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사정없이 돌진하는 겁니다. 어떻게 될까요. 내 차는 트럭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겠지요. 유유히 내 차를 밀어붙인 뒤에야 뒤늦게 일방통행이란 걸 알 겁니다. 이때쯤이면 나는 이미 사망 또는 치명상을 입었겠지요.

둘째, 억울하지만 내가 잘못을 인정하는 겁니다. 물론 잘못한 게 하나도 없지요. 그러나 힘에서 밀리는 걸 어떻게 합니까. 현실을 인정하는 거지요. 트럭보다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내가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일단 후진을 합니다. 트럭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차를 뒤로 물리면 그때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갑니다. 이번에는 살아서 말입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몸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겠지요.

매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변수를 점검한 뒤 맞다는 확신이 서면 매매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시장이 반대로 움직입니다. 혹 ‘내가 틀렸나’하고 판단 근거를 조목조목 따져 봅니다. 틀린 게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 여러 가지 변수들을 무시한 채 자기 갈 길로만 가는 겁니다. 덩치 큰 트럭과 같이 말입니다.

대항하는 방법도 같습니다. 첫째 방법을 택하면 속은 후련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사망 아니면 중상입니다. 둘째 방법을 택하면 속에서는 천불이 나지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이래서 어렵습니다. 내가 틀린 것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맞더라도 시장이 아니라고 하면 이 역시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아투자자문 사장 sinah@shinah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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