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고소득층을 주로 상대하는 하나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도 달러 환전과 송금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하나은행 PB센터 관계자는 “일부 고객은 경제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특히 상류층의 위기의식이 두드러지는 느낌”이라고 귀띔했다.
북한 핵위기와 경기침체,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불안감 등이 겹치면서 서울 강남과 여의도 등 고소득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달러 사재기’가 확산되고 있다. 또 ‘돈의 해외 탈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은행 대치동지점의 외화정기예금 잔액은 작년 12월 말 20만달러에서 올 1월 말 23만 3000달러, 2월 말 27만6000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우리은행 전체로는 외화정기예금 잔액이 2월 말 8억6935만달러에서 이달 7일 10억5121만달러로 증가했다.
하나은행의 외화정기예금은 2월 말 4억9000만달러에서 7일 5억3000만달러로 1주일 사이에 4000만달러나 증가했다.
외국계 은행 PB창구에는 돈을 맡기면 나중에 해외에서 인출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미국 국채 등 외국 채권에 관심을 갖는 부유층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 한 건설회사 사장은 “미국 일부지역에서 한국인의 부동산 매입이 늘었다”고 전했다.
외국계 증권사 고위임원인 A씨는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투자자들은 최근 보유자금을 대부분 달러로 바꿔놓았다”며 “필요하면 언제라도 쉽게 한국을 떠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암달러상들도 “원-달러 환율이 얼마나 오를지 몰라 달러를 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통계적으로도 입증된다. 6일 현재 거주자외화예금 총액은 139억7000만달러로 작년 말의 124억3000만달러에 비해 15억4000만달러나 급증했다. 올 들어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 하락(원화환율 상승)이 두드러진 한 원인도 이 같은 달러매입 수요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전문가들은 “원인이 어디에 있든 돈이 빠져나가는 나라는 위험하다”며 “새 정부는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 같은 우려할 만한 현상을 직시하고 시급히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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