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벤처-권력 유착 검은 돈 공생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7시 56분


벤처기업 쪽 정보를 주로 수집하고 다녔던 증권업계의 한 정보맨은 지난해 말 한 벤처업체를 찾았을 때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회사 대표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회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대표는 뜬금없이 한 국회의원 이름을 대며 “아주 가깝게 지내는 분”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이 정보맨은 “한마디로 ‘내가 이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식의 과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한 업체를 방문했을 땐 아예 “금융권의 높으신 ○○○께서 우리 뒤를 봐주고 계신다”는 얘기까지도 사장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코스닥 시장이 결국 이렇게 변질되고 마는 건가 하는 참담한 심정마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게이트’식 사건 줄이어〓지난해부터 시작된 ‘○○○게이트’식의 금융 비리가 최근 다시 부각되면서 ‘권력과 벤처의 유착’이라는 해묵은 주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씨 사건 때 이미 온갖 소문이 꼬리를 문 터라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최근 수지 김 사건으로 기소된 윤태식씨의 패스21에 정치권 자금이 들어갔다는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

시장에서 권력과 벤처의 밀월 의혹이 가장 극성을 부렸던 것은 코스닥투자와 벤처투자붐이 한창이던 1999년∼2000년 초. 대체로 ‘모 유력인사가 차명으로 투자한 벤처업체가 코스닥 시장 등록심사를 통과했고 등록 직후 주가가 크게 올라 그 인사가 큰돈을 모았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이름만 바꿔서 비슷한 소문이 꼬리를 물었던 것은 소문에 연루된 주체들 사이의 이해 관계가 겉으로 봐도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

▽뒤를 봐주는 사람 있다는 의혹〓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벤처붐이 일 때만 해도 벤처업체 주식에 액면가로 초기에 투자를 할 경우 그 회사가 등록심사만 통과하면 쉽게 돈을 튀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식을 준 대가로 업체가 받게 되는 이득도 만만치 않았던 것.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유력인사가 뒤를 봐준다고 했던 업체들 가운데 기술력에 의심이 가는 업체인데도 코스닥에 등록하는 사례를 봤다”고 전했다.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비중이 높은 업체일 경우 영업에서 직접적인 이득을 기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벤처업계의 한 임원은 “정부 기관에 납품 비중이 높은 A라는 회사가 여권의 실세에 지분을 조금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비 벤처 가려내야〓벤처 관련 의혹이 빈발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회사 관계자가 아닌 외부 사람들이 가차명으로 회사 지분을 취득했더라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스닥위원회는 벤처업체의 코스닥 등록 심사를 할 때 해당 업체에서 제출하는 주주명부만을 토대로 심사를 벌인다. 증권업협회 한 관계자는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명의 이전을 안 했다면 증권예탁원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실제 주식 소유자를 찾으려면 명부를 보고 한명 한명 다 찾아다녀야 한다”면서 “매년 300개 회사가 심사에 올라오는데 무슨 수로 모두 확인을 하느냐”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실제 주식 소유자를 찾으려면 예금 계좌를 뒤져야하는데 코스닥위원회에서는 실정법상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

이처럼 권력과 벤처의 유착 소문이 퍼지면서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 장외시장 컨설팅업체 코리아밸류에셋의 윤희철 팀장은 “기술 하나만을 믿고 미래를 꿈꾸는 수많은 다른 벤처기업들을 위해서라도 ‘사이비 벤처’를 솎아내는 작업을 하루빨리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동근·박정훈·이완배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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