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CEO 열전]이병규 현대백화점 사장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53분


“배달직원이나 백화점사장이나 고객을 생각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9월초 추석을 코앞에 둔 토요일. 서울 잠실 J아파트였다. 추석선물을 받기위해 현관문을 열어준 주부는 화들짝 놀랐다. 선물세트를 들고선 반백의 중년 배달원이 건네는 인사말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백화점 사장 이병규입니다. 000님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이사장은 추석,설등 명절때마다 현대백화점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직접 선물배달에 나선다. 그가 이처럼 배송현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자신이 근무하는 직장이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백회점은 어떤 분야보다도 고객과의 친밀도가 중요하고 고객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고객접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

10월 중순, 이번에는 서울 현대백화점 본점에 마련된 미니 오케스트라 공연장. 이 사장은 어김없이 고객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다른 일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객을 위한 사은(謝恩)행사에 초청자가 참석하는 것은 그 무슨 일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연주가 끝난후 귀가하는 고객들과 일일이 감사의 악수를 청하는 모습도 고객접점을 넓히려는 그의 포석이다.

현대백화점 이병규(李丙圭)사장(47). 그가 경영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테마는 ‘인화(人和)경영’이다. 7월 상반기 신입사원 환영회때 일이다. 20대 사원들 틈에 낀 이사장은 직원들의 돌발적인 호출(?)에 붙들려 나왔다. 대개의 경우 CEO(최고경영자)들이 이런 상황을 맞으면 ‘잘해봅시다’라는 의례적인 일장훈계를 하는게 다반사다. 약간 튀는 CEO들이라도 연설대신 바로 노래로 들어가는 정도가 보통이다. 울고넘는 박달재, 제비, 검은 장갑 낀손, 많이 양보해도 ‘존재의 이유’정도를 부르면 대단히 주목받는 사장일것.

이사장은 20대 새내기들 틈에서 갑자기 앞으로 돌진한다. 음악 담당자에게 무어라 귀속말을 하더니 글쎄 곧이어 나온 음악이 당시 유행하던 컨트리꼬꼬의 ‘김미김미(기브미 기브미)’였다. 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춤을 춘다해서 일명 헤드뱅뱅으로 불리는 ‘테크노 댄스’를 멋들어지게 추어 보였던 것. 참석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어느정도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가 신입사원과 함께 뛰며 부대낀 이런 모습은 인화경영을 몸소 실천하려는 작은 행동들 이라고 그를 잘아는 주변의 경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번에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질문을 던졌다. 나름대로의 감을 잡아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요,정주영 회장 입니다(현재 정주영씨의 공식직함은 없지만 그는 이렇게 부른다)” 그는 지난 76년 12월부터 꼭 20년간 현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보필했다.20년간 왕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해서 ‘새도우(Shadow) 리’라는 애칭이 붙는 것도 그래서다.

“회장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철두철미한 기업가 정신과, 인생의 소박함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그분의 장점을 닮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40대 중반에 한국굴지의 백화점사장을 달았다 해서 그에게 좋은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92년 대선이후 정치상황 때문에 불가피했던 1년 8개월동안의 도피생활은 그에게 인고(忍苦)의 의미를 일러준 시기였단다.

그이후 작은일에 크게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는 습관도 그때의 흔적이다.

이 사장은 “나는 취미도 특기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낚시’를 말한다. 특히 6∼7월 밤낚시의 풍광을 권했다.

현대백화점은 올 3분기까지 매출이 전년대비 17% 증가한 1조 2182억원을 달성했다.경상이익도 전년대비 94% 올라간 1010억원.

“백화점 업계도 디지털 혁명에서 예외일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기호와 생활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일시에 상품구매방식이 변화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현대백화점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고품격이미지로 승부하겠다는 얘기다. “40대 CEO가 주목받는 이유가 뭡니까. 젊음과 희망이지요. ‘고객이 최고’라는 믿음을 늘 가슴에 새길 겁니다” 이사장은 내년에 미아점과 목동점을 열고, 2003년에는 부산2호점을 개점, 현대백화점을 만나고 싶어하는 고객들과의 접점을 넓힐 계획이다.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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