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왜 추락하나?]투자자 실망투매 봇물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13분


‘집은 이미 불타고 있는데 불을 끄기는커녕 앞으로 새 집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고 있는 형국이다.’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무너진 22일 증시에서는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정작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모델하우스면 어떠냐’는 한가로운 논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주가 왜 이렇게 떨어지나〓이날 주식시장은 한마디로 ‘붕괴(CRASH)’를 우려할 만큼 대폭락 사태를 연출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종합지수 700선이 너무나 힘없이 무너졌고 코스닥시장에서는 무조건 ‘팔고 보자’는 투매물량으로 공황심리를 연출했다.

새로운 악재가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지만 △구조조정 지연 △투신권 불안사태 지속 △경상수지 악화 △외국계 금융기관의 잇따른 경고 △수급불안 등 지금까지 거론된 것들이 새삼 대형악재로 작용했다.

▽정부 대책은 ‘원론’ 수준〓시장반응이 이처럼 냉담했던 것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교과서적인 원론 수준에 그쳤기 때문. 이날 발표 내용 중 당장 증시수급을 조절하거나 시장을 부양할 만한 직접적인 대책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현 경제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재연할 정도의 위기국면이 아닌데도 투자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에 싸여 위기론이 증폭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경제 실상을 정확히 알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겠다는 계획이지만 시장은 구체적인 ‘실탄’을 요구하고 있어 투자심리를 호전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분석.

당장 시장에서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투, 대투를 살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지 않은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시기를 이달 말로 앞당겨 투신을 증시의 매수 세력에 가담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많은 손실을 보고 있는 투신사들이 주식을 살 여력은 크지 않아 보인다.

또 새한그룹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신청을 계기로 워크아웃 기업 및 중견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은행권의 부실이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불안심리도 잠재해 있다.

채권시가평가 실시와 관련해 재정경제부 이종구 금융정책국장은 “기존 공사채형 펀드 중 장부가로 평가하는 펀드는 시가평가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서둘러 환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시장과 당국의 인식 괴리〓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투신(운용)사 사장은 “시장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업계와 정부가 모두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증시판이 깨지고 나서 대책을 세울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시장원리를 중시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한다는 명분을 충분히 이해한다 해도 지금은 자본시장의 판이 깨지는 마당에 약발도 안 먹히는 대책을 내놓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어떤 대책 가능할까〓정부의 고민대로 실제로 증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처방을 하는 데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시장이 정말 붕괴되고 있는지에 대한 견해도 엇갈리는데다 증시가 위기론에 지나치게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인식도 공존하고 있기 때문.

시장 관계자들은 “주식 시가 총액이 회사 청산가치보다도 낮은 회사가 수두룩할 만큼 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라며 “단숨에 시가총액 100조원이 날아간 사실을 감안한다면 정부도 립서비스 수준의 대책 남발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현주 미래에셋 사장은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크게 저평가된 상황을 감안해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을 허용하는 것도 증시대책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김두영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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