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해외출장중"…선거철 껄끄러워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7분


4·13 총선이 다가오면서 주요기업 총수들의 해외출장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또 벤처 및 코스닥열풍으로 돈을 번 신흥기업인이나 중소기업체 경영자도 외유에 떠나거나 국내에 있더라도 아예 출근을 않는 경우가 많다. 해당기업들은 ‘사업 구상을 위해서’ 등의 이유를 대지만 업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손내밀기’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귀띔한다.

이웅렬(李雄烈)코오롱 회장은 미국 최대 인터넷 업체인 AOL 등 19개 인터넷 및 벤처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21일 출국했다. 이회장의 해외 출장은 이달 들어 두번째. 코오롱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김승연회장 한달만에 다시 출국▼

김승연(金昇淵)한화 회장은 25일까지 하와이에서 열리는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회의에 참석한 뒤 회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실리콘밸리로 건너갈 예정이다. 한화측은 “LA 등에 있는 공장과 법인을 방문하고 실리콘밸리의 동향도 파악할 계획”이라고 설명. 1월 중순 미국 실리콘밸리에 머물면서 사업 구상을 했던 김회장은 귀국 한달만에 다시 출국한 것.

조석래(趙錫來)효성 회장과 정몽규(鄭夢奎)현대산업개발 회장도 PBEC 행사에 참석중이다. 정회장은 주택 부문의 온라인화를 주창하며 해외 벤처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는게 회사측의 공식설명.

김준기(金俊起)동부 회장도 LA와 뉴욕에 있는 지사들을 순방하기 위해 이달초 미국 방문길에 올랐으며 이준용(李埈鎔)대림 회장과 김석준(金錫俊)쌍용 회장 등도 조만간 해외 현장 방문을 계획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요즘 잘나가는’ 신흥 벤처기업 및 증권투자사 경영인중에도 해외로 떠난 사람이 많다.

증권투자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P씨는 지난달초부터 입후보예상자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동문회 후원회 출판기념회 요청을 견디다 못해 수시로 해외로 떠난다. 그는 국내에 있을 때도 사업상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고 ‘해외출장중’이라고 말하도록 비서에게 지시했다.

▼일부 벤처사업가도 해외 나갈듯▼

역시 증권분야에서 일하는 K씨는 미국 뉴욕의 거래업체와의 협의를 위해 4월중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앞당겨 지난주 출국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C씨도 요즘 정치권의 지원요청을 피하기 위해 사무실에 거의 나가지 않고 임직원들과 전화로만 업무를 협의한다. 한 기업인은 “설사 후보들의 압력이 없더라도 아는 후보와의 안면때문에 도와 주어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가 나중에 피해를 당한 사례가 한두번이었느냐”고 말했다.

▼선거때마다 '외유바람' 불어▼

이같은 상황은 96년 4.11 총선때와 비슷하다. 당시에도 총선을 한달가량 앞두고 주요 기업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해외로 떠났다가 선거 직전후에 귀국해 화제가 됐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총선을 앞두고 흐트러진 사내 분위기도 바로잡고 금융 구조조정을 앞두고 자금 수급 계획도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정치권과의 관계 때문에 자리를 피해야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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