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챙기고 훨훨 '철새' 벤처맨 는다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벤처형 대기업 유니텔㈜은 이달 초 삼성SDS로부터의 분사를 앞두고 지난달 100명이 넘는 대규모 공개채용을 실시했다. 350대 1의 높은 경쟁률 속에서 특히 인사담당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점은 지원자 가운데 23%가 다른 벤처기업 출신이라는 것. 유니텔 관계자는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무명 벤처기업 직원들이 이미 성공대열에 진입했거나 자금력이 든든한 대형 벤처로 이동하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요즘 벤처업계에서는 몸값만 챙기고 철새처럼 날아다니는 인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반기업에서 벤처로, 또 소규모 벤처에서 대형 벤처로 우수인력들이 이동하면서 기술축적은 물 건너가고 핵심인력이 빠져나감으로써 이들을 믿고 투자한 벤처기업의 연쇄도산도 예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핵심인력 13명을 다른 벤처에 모두 빼앗겼다는 코스닥 등록업체 N사의 김모사장은 “수억원의 몸값만 챙기고 회사문을 박차고 나서는 이들을 보면서 모험보다 경제적 윤택만을 택하는 얄팍한 세태에 분개했다”고 말한다. 기술력은 있으나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한 인터넷 솔루션 개발업체 B사는 핵심 엔지니어 인력의 유출로 개발일정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경력 기술자 공급이 수요에 크게 못미치자 대형 벤처와 헤드헌터 업체들이 우수 인력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기 때문. 이 회사 관계자는 “한명만 빠져나가면 이를 대신할 엔지니어를 찾을 때까지 개발 일정이 잠정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IT전문 헤드헌터 회사에서 벤처 컨설턴트로 활동중인 드림서치 문희숙이사는 “대다수 소규모 벤처 직원들의 경우 유명한 벤처의 이름만 대면 조건을 묻지도 않고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대답한다. 과거 대기업에만 우수 인력이 몰렸듯이 이제는 벤처업계에서도 대형 벤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현상을 설명했다.

인터넷 카드서비스회사 레떼컴의 김경익사장은 ‘정서적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금전적 보수 등에 치우친 이성적 관리만으로는 우수 인력의 외부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 직원들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기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처방한다.

국내 벤처업계의 대부(代父)로 통하는 미래산업 정문술사장은 “돈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은 진정한 벤처기업인이 아니다”라며 철새성 이동을 강하게 비판한다. 최고경영자의 비전이나 조직상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스톡옵션 등의 금전적 유혹에 이끌려 벤처업계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모험 극복을 전제로 한 벤처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