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넷'붙이면 떼돈…벤처'묻지마 창업' 月평균 250개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최근 한 창업투자회사에 자칭 벤처기업 창업자가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한 이동통신업체와 게임 공급계약을 해 연간 매출 300억원은 자신 있다”면서 “기업가치가 400억원은 되니 60억원을 투자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벤처기업가는 연간 매출이나 기업가치의 산출 근거 등 기본사항에 대한 질문에 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상담을 맡은 투자심사역이 “계약서는 있으며 게임이 현재 서비스되고 있느냐”고 묻자 결국 “계약서는 앞으로 사인을 해야 하며 서비스도 준비 중”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또 다른 창업투자회사의 P심사역도 2주일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화면으로 상대를 보면서 인터넷 채팅을 즐기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투자를 요청했기 때문. 아이디어가 현실성이 없어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P씨는 “왜 좋은 사업계획에 투자하지 않느냐며 심하게 따져 진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벤처열풍을 타고 최근 ‘묻지마, 벤처 창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98년5월부터 지난달까지 벤처기업으로 지정한 업체는 5212개사. 매달 평균 248개사가 ‘젖과 꿀’이 흐르는 벤처에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향후 벤처기업 수를 2만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창업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회사이름에 ‘텔’이나 ‘넷’만 붙으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실현성 없는 아이디어로 창업에 나선 ‘무늬만 벤처’인 경우. 이런 기업들은 어설픈 기술로 코스닥에 등록만 되면 주가차익을 챙긴 뒤 회사와 손을 떼겠다는 속셈으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한국IT벤처투자 조명환 책임심사역은 “우리 회사를 찾는 상담자중 30% 이상은 이런 부류에 속한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기술이 덜 필요한 인터넷방송 쪽에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벤처에 투자하면 무조건 ‘대박’이 터진다고 믿는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얼토당토 않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의 경우 1년에 평균 1000건을 검토, 60개사에 투자결정을 내리고 그 가운데 10%만이 나스닥에 상장될 정도로 성공확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신청업체의 20%가 코스닥 등록에 성공했다.

박태웅인티즌사장은 “지난해의 순이익이 5억원에 불과한 업체의 코스닥 주가가 20만원을 넘어서는 등 실제 경영실적과 주가가 큰 차이를 보인 것도 문제”라며 “사전에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사회적 심사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호성기자> 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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