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계좌추적권 남용실태]개인신상 고스란히 노출

  • 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18분


현재 금융기관에 계좌추적을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은 △검찰 △국회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등 이른바 ‘힘있는’ 기관들.

이들 기관의 계좌추적 요구는 결국 은행 등 상대적으로 ‘힘없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직접 처리하게 된다. 은행원들은 “해당기관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최소한 이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예금자정보 유출 우려 ▼

A은행 담당직원은 “포괄적인 자료를 요구받으면 거북한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금융거래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때는 목적 및 용도와 대상 등을 명확히 기재한 문서로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요구공문서에는 ‘의 일 현재 계좌잔액과 월∼월의 거래내용’을 요구한 뒤 구두로 예금자 인적사항 전산원장 전표 등 공문에 적시하지 않은 자료까지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전표 등에는 혐의자의 정보뿐만 아니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의 예금계좌번호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까지 적혀있어 ‘도매금’으로 해당 기관에 넘어가게 된다.

B은행 담당 직원은 “요구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에 한해 최소한의 범위내에서 정보를 요구하도록 법 규정에 명문화돼 있음에도 지나치게 방대한 자료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표의 경우 사본만 요구해도 될 것을 전표원본철까지 통째로 가져가버려 뜻하지 않게 자신의 금융거래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

▼ 행정편의주의 ▼

금융기관 담당직원의 가장 큰 불만은 압수수색 영장이나 정보요구공문을 팩시밀리로 보내는 것. 보내는 기관에서는 총무처가 팩시밀리로 전송한 문서도 공식문서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해당 금융기관에서는 공식문서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결국 한밤중에 은행직원이 영장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 영장인지 확인하는 등의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또 일부 기관에서는 정보요구 공문을 해당 기관장 직인만 찍은채 마치 백지수표처럼 들고 다니다 현장에서 필요자료 목록을 적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경부는 최근 이같은 관행에 대해 관련 기관에 자제를 요청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금융기관이 고객의 금융거래정보를 외부기관에 제공했을 때는 반드시 그 고객에게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정작 등기우편으로 배달되는 이 통보에 드는 비용은 모두 금융기관 부담이다.

C은행 직원은 “많을 때는 하루 1천통 가까운 통지서를 보내야 하는데 등기우편료가 1백만원이 넘는다”며 “수요자인 해당기관이 고객통보용 회신봉투나마 제공하는 성의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고압적인 자세 ▼

D은행 관계자는 “계좌추적을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이 하나같이 힘있는 기관이어서인지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도저히 시간에 댈 수 없는 자료를 요청해놓고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 ‘공무집행방해’ 운운하며 협박한다는 것. 또 자료를 받아가기 위해 금융기관에 찾아온 해당기관 일부 직원들은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예금자정보 요구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신분확인 절차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수사관이나 세무서 직원을 사칭하는 사람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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