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딜러의 하소연]『싸움터 잃은 병사신세…자책감뿐』

  • 입력 1997년 12월 11일 19시 59분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 나흘째 상한폭까지 폭등한 11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외환딜링룸. 전장(戰場)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여성딜러 김정은(金貞垠·27)씨에게 고객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언제쯤 달러를 살 수 있는 있는거요』 답변을 기다리는 고객들의 전화에 김씨는 「예측불가」라는 짧은 답변뒤에 고개를 떨구었다. 『달러를 「사자」는 주문은 줄을 섰는데 「팔자」는 사람은 없으니 장이 서지 않는 외환시장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환율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일 뿐입니다』 이날도 원화 환율은 개장 4분만에 상한가인 1천7백19원80전까지 치솟으며 거래가 사실상 중단돼 김씨는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전장을 떠나야했다.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해외로부터 외화차입의 길이 막혔고 한국은행도 달러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12월들어 로열티지급이나 차관원리금 상환으로 기업들의 달러수요는 더욱 늘고 있습니다. 결국 공급은 없는데 수요는 줄지 않으니 돌파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8월 외환딜링룸에 발령을 받은 김씨는 그동안 여러차례 외환위기를 겪어보았지만 지금처럼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수입대금을 결제할 달러를 구하지 못해 하루 수천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들로부터 전화를 받을때마다 참을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94년 12월에 외환은행에 입사한 김씨는 95년 11월 외환딜링룸 맞은편에 있는 국제부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 딜러의 꿈을 키워왔다. 사원들조차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딜링룸에서 숨가쁘게 움직이는 딜러들의 모습을 보며 「승부사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느껴왔던 것. 『국가신인도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외국의 투자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마음놓고 한국에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신뢰를 심어주어야겠지요』 김씨는 또다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전장에서 「Done(거래성사)」을 외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신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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