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금융 빅뱅」]대지진 진앙지 종금사

  • 입력 1997년 11월 15일 20시 29분


한국경제를 뿌옇게 뒤덮고 있는 외환 및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는 종합금융사가 있다. 금융 대지진의 진앙지 격이다. 종금사의 부실화는 전체 금융시스템을 한꺼번에 마비시킬 정도로 그 충격과 파장이 실로 엄청나다. 단기자금 공급의 1차적 창구인 종금사의 자금난은 곧바로 대출금 회수로 이어져 기업 자금난과 연쇄부도를 촉발한다. 그리고 기업부도는 종금사의 부실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12일 현재 30개 종금사의 기업어음(CP) 대출잔액은 84조8천1백억원. 「나부터 살기 위한」 여신회수로 이달들어 2주일 사이에만 1조원 가량 줄었다. 올들어 종금사의 부실여신은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5일 현재 증권거래소에 공시된 부실여신액만 3조7천억원선. 전체 종금사 자기자본금 4조2천5백억원의 87%에 이른다. 그러나 금융계는 기아에 물린 3조6천억원 등 실질 부실여신은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전체 자기자본금의 두배 가까이를 까먹고 있는 셈.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고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시화하면 가장 먼저 「칼」을 대야할 곳은 종금사라는게 금융계의 정설. 정부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진 종금사는 아예 파산 정리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을 움직임이다. 재정경제원은 종금사별로 부실여신 정도에 따라 △경영개선명령 △유상증자권고 △기업인수합병(M&A)권고 △영업 일부제한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근간으로 하는 「조기 시정장치」를 연내에 도입, 「살생부」를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종금사로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지난 72년 8.3 사채동결조치 이후 사(私)금융의 제도금융권 흡수를 위해 설립된 종금사(당시는 투자금융)가 막다른 골목까지 오게 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동양종금 조왕하(趙王夏)사장은 『대마(大馬·대기업)는 죽지않는다는 신화만 믿고 철저히 해야할 기업심사를 소홀히 한 채 자기자본의 2,3배를 초과하는 여신을 해준 게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금융연구원 서근우(徐槿宇)부연구위원은 『해외에서 3개월짜리 단기외화를 빌려서 장기대출로 활용하고 러시아 태국 등의 부실채권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등 국제금융업무를 안이하게 해온 탓에 외화 차입난을 자초했다』고 진단했다. 사채자금을 양성화하고 지방금융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아래 무더기로 신규허가를 내준 정부도 원천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은행의 특별융자를 받은 종금사는 모두 19개. 이들은 특융을 받기 위해 대주주의 경영권포기각서와 자구계획을 한은에 제출해야 했다. 조사장은 『자구노력의 이행결과를 점검, 정리할 종금사는 서둘러 청산절차를 밟게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라종금 차승철(車承轍)사장은 『현재 팔 수 있는 외화자산은 물론 부동산 등 국내자산도 모두 처분하고 있는데 정부가 숨돌릴 겨를도 주지않고 종금사 통폐합을 거론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위원은 『종금사를 대신할 단기자금 조달창구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종금사를 정리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종금사 부도는 투자신탁회사와 은행 등 다른 금융권의 부실화를 가져와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강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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