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개혁이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의 밥그릇 싸움으로 초점이 흐려져 있지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정부 주도형에서 민간 주도형으로 그리고 공업형에서 정보 산업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 빌려주었던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거래자 보호등 세심하게 ▼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인 신용질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금융기관이 흔들리면 경제활동에 엄청난 혼란과 위축이 초래된다. 생산면에서 경쟁력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금융기관이 흔들리면 추락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흔히들 산업부문에서 시장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금융부문도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금융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금융산업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별적 금융서비스와는 달리 금융기관 전체의 신뢰성 자체는 모든 사람이 이로부터 혜택을 입는 일종의 공공재이기 때문에 시장기능에만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주요한 기능이자 책임이다.
부실금융기관의 처리방법은 크게 보아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자금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방법, 세금혜택 등 정부지원을 전제로 제삼자가 인수토록 하는 방법, 정부 지원 없이 파산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도 주가 폭락, 예금의 대량 인출 등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촉발되고 정부가 여기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함으로써 장기화되었다.
어느 방법을 쓰는 게 좋은가. 필자는 두가지 원칙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경우에 따라 처리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에 어느 처리 방법을 쓸 것인지에 대해 실행 가능하고 현실성 있는 준칙을 미리 정해 놓고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
처리원칙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채산성을 고려해야 하고, 은행과 여타 금융기관을 구분해서 원칙을 정해야 한다. 어느 시점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룰이 있어야 하며 예금자와 채권자 그리고 금융기관의 공신력을 믿은 거래자들을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법으로 보호해야 하는지도 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 어떤 처리방법을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검증이 가능하고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이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평성 시비가 일거나 로비의 강도에 따라 결정이 영향받아 적절치 않은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능률 올리려다 망칠수도 ▼
그동안 보수적인 금융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나라들도 이제는 국경 없는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금융 빅뱅」이라 불릴 정도의 급진적인 금융개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 개혁은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저돌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신용질서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자유화 개방화를 추구하다가는 경제의 능률을 올리려다 오히려 경제 자체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범할 우려가 크다. 금융개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부실금융기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보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채수찬 <미라이스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