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스페인 왕자(펠리페 2세 추정)의 초상’(1573년). ⓒThe San Diego Museum of Art
그림 속 인물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굴 하관과 손가락은 앳된 소년인데, 절제된 표정과 위엄 있는 자세는 노숙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시선은 정면도 측면도 아닌 대각선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묘한 초상화의 주인공은 누굴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스페인 왕자의 초상’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래의 국왕이 될 인판테(infante·왕실의 어린이를 부르는 말) 펠리페, 카를 5세의 아들.”
연구자들은 이 인물을 펠리페 2세로 추정했지만, 그 정체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됐다. 작품이 완성된 1573년경이면 펠리페 2세(1527~1598)가 이미 중년이란 게 주된 논쟁거리였다. 이미 40대 후반인 남성과 어린 아이의 모습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은 “당대엔 성인을 어린 시절 모습으로 그리는 관습이 드물지 않았다”며 “특히 왕실 자녀들의 초상을 한데 모아보면 이런 ‘회상적 초상’ 관행이 더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초상화 주인공이 펠리페 2세라는 쪽에 힘을 싣는 의견이다.
초상화는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자주 쓰였다. 그림 속 펠리페 2세가 쥐고 있는 물건 역시 ‘왕국을 통솔할 준비가 된 군주’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에메랄드빛 사냥복을 입은 왕자의 손엔 최고 통수권자를 상징하는 단도와 지휘봉이 들려 있다. 허공을 향한 왕자의 시선은 관람객들이 자연스레 소년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 역시 상당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스페인 궁정의 공식 초상화가 알론소 산체스 코엘료(1531~1588)가 그렸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16세기 가장 유명했던 여성 화가 앙귀솔라의 솜씨”라는 주장이 중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출신인 앙귀솔라는 1559년 펠리페 2세의 초청을 받아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왕비 이사벨 드 발루아의 그림 교사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