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마음[소소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1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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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국가 지정 ‘가정의 달’도 얼추 끝나간다. 양가 어른들과 식사를 하고, 명색이 어버이날이라고 조금씩 챙기고 나니 뭘 대단하게 한 건 아닌데 주머니가 훅 가볍다. 식당은 어디로 모셔야 하나, 편하게 외식하는 곳보다는 깔끔한 곳이 좋겠지. 식사 메뉴는 어떤 걸로 예약하지? 용돈은 어느 선으로 드릴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과 5월이라고 다르지 않은 월급 사이에서 궁리하다, 눈앞에 켜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어버이날 용돈’을 쳐봤다. 3일 전이나 2년 전이나 고만고만한 고민들과 댓글들. 언젠가 이맘때 동생과 날 서게 주고받은 말이 떠올랐다. 동생과 어버이날 용돈을 모아서 함께 드리기로 했던 때다. 그녀가 제안한 용돈 금액이 조금 적게 느껴졌다.

“흠. 얼마 전에 여행도 갔다 오고 이번 달에 약속이 많았어서 좀 빠듯한데.”

“그런 달도 있지만, 남들도 5월은 긴축 재정인데 좀 미리 생각하지 그랬어? 평소에 다른 돈은 잘 쓰면서 엄마 아빠 용돈에 계산하기 미안해서 일부러라도 더 하고 싶어.”

“왜 그런 죄책감을 느껴? 내 친구들도 이 정도씩 드린다고, 언니가 기준이 높대.”

“평균만큼 드릴 수도 있지만 엄마 아빠가 우리 키운 거 생각하면 가능한 더 드리려고 하는 게 맞지 않아?”

“언니 웃긴다, 무슨 말인진 아는데 그럼 어떤 부모들은 대충 키웠겠냐. 그게 꼭 돈 액수로 표현돼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엄마가 작년엔 얼마 줬는데 올해는 얼마네, 계산하겠어? 평상시에 틱틱대지나 마.”

결국 동생도 내가 제안한 액수에 맞추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사실 그녀의 이야기에 순간 말문이 막혔었다. 부모님이 용돈 금액으로 뭐라 할 리는 없고, 얼마를 드리든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도 사람인데 자식에게 더 많은 용돈을 받으면, 더 비싸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 모셔가면 더 즐거워하시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달 내가 돈을 고민한 것은 부모님 용돈뿐이 아니다.

얼마 전 학교 선배의 아버지가 부산에서 돌아가셨다. 누군가 “그 선배랑 친해?” 물어본다면, “어어, 친했어!” 분명히 꽤 친했던 것은 맞는데 시제가 과거형으로 나오는 사이의 선배.

시간 맞는 동기들과 함께 조문을 가기로 하니 그다음은 부의금이었다. 5만 원을 내야 하나, 10만 원을 내야 하나… KTX 왕복에 택시비까지 교통비가 얼추 15만 원이니 5만 원도 괜찮지 않을까. 비슷한 고민이었는지 누군가 단톡방에 부의금을 물어봤다. 나를 포함해 2:2로 5만 원과 10만 원이 갈렸다. 부의만 전달하는 동기들 역시 5만 원과 10만 원이 나뉘었다.

5월은 어버이날에, 생일 같은 기념일까지 줄줄이라 예상 지출부터 큰 달이다. 교통비가 없다면 흔쾌히 10만 원은 넣을 텐데 당장 갑작스러운 지출로 20만 원을 넘기려니 조금 크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또 같은 그룹에서 누군가는 더 낸다고 하니 고민스러웠다. 결국, 행여 내 성의가 누군가보다 적게 느껴질까 하는 염려다.

평소 ‘경사는 못 챙겨도 조사는 잘 챙겨야 한다’는 기조를 보여온 남편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내가 선배라면 후배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는데, 부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엔 액수는 너무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그 말에 눈 감고 5만 원을 봉투에 넣었다. 부산에서 만난 선배는 ‘뭣 하러 이렇게 멀리까지 왔냐’고 고마워하며 차비라며 우리에게 다시 5만 원씩을 쥐여줬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돈의 액수가 모든 마음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꼭 큰 비용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크기나 진하기는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그렇지만 또 돈이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방식이자,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을 때 그냥 주는 내 마음이 ‘더 많이 쓰고 싶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 어떤 우선순위를 고려할 필요 없이 펑펑 쓸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으면 이런 고민을 안 하려나? 요즘 몇 년 간 사회를 강타한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도 이런 열망들이 모인 거겠지. 교과서에서 배운 경제적 자유는 원하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할 자유였는데, 이제는 원치 않는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원하는 걸 맘껏 할 수 있는 자유로 훨씬 널리 쓰인다.

애석하게도 이번 생에 후자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긴 요원해 보이고…아마도 순간순간 줄타기를 하며 살 것 같다. 내 마음이 상대에게 온전히 닿기를 바라며, 거꾸로 내가 받는 사람일 때도 이 바람을 기억하면서.

그래도 오늘은 허무맹랑한 꿈에 기대어 볼까, 퇴근길 로또라도 한 장 사봐야겠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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