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는 나를 봤으면 좋겠고, 그는 다른 곳을 보았으면…권력이 나를 본다는 것[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7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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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사진 No. 45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오늘을 생각해보는 [백년사진]입니다. 오늘은 두 장의 인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여성 두 명이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입니다. 제목은 ‘사회봉사하는 두 여자’입니다.

. 1925년 1월 25일 동아일보.
. 1925년 1월 25일 동아일보.
기사를 읽어보니 유아사망율이 높은 조선의 상황을 걱정해 미국 감리교가 파견한 미국인 여의사 ‘로선복’(왼쪽)씨와 조선인 산파 ‘한신광’씨가 무료 진료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스토리입니다.

다음 사진을 보겠습니다. 콧수염의 백인 남성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제목을 보니 ‘영국 내각 조직의 대명을 수락한 노동당 수령 맥도날드씨’입니다. 영국 런던 발 기사인데, 로동당 총재 람제 맥도날드씨가 차기 영국 내각의 수장이 되었다는 뉴스입니다.

1924년 1월 24일 동아일보.
1924년 1월 24일 동아일보.

▶우선, 사진 속 모델들이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 장은 봉사의 따뜻한 온도가 전달되는 반면, 남성의 사진은 지난주 한반도를 강타했던 한파만큼 서늘한 느낌을 줍니다. 당시 카메라 기술로도 충분히 웃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지만 차가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었네요. 저 남성이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좀 따뜻했을까요?

▶100년이 지난 요즈음 출근하는 지하철역에는 4월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예비후보들이 명함을 들고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빠듯한 출근 시간이라 일단 명함을 건성으로 받은 후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들여다보게 됩니다.
후보자들 시선의 방향이 어떤가요? 여러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아니면 허공이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나요?

▶정면을 바라보는 사진은 강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웃음도 차가운 표정도 모두 정면일 경우 강하게 뇌리에 남습니다. 몇 년 전 시리아 폭격으로 상처를 입었던 어린아이가 앰블란스 의자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면을 보고 있는 사진이 지구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프리카 구호 단체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어린아이들도 우리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입니다.

국회의원에 나오려는 후보들은 거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신인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감정을 건드리는 정면 샷은 때로는 보는 사람을 거북하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광고에서 시선을 끌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는 ‘3B’(Beauty, Baby, Beast – 미인, 아기, 애완동물)가 아닐 경우 보는 사람이 불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문에 실리는 인물 사진 중에서 정면을 바로 보는 사진은 할 얘기가 분명한 인터뷰 대상자이거나 본인이 만든 제품을 광고하거나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 인사를 하러 세상에 나왔거나 아니면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낯설고 나이 많은 남성이 우리를 바라본다면 때로는 위협을 느끼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다선 의원이나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의 경우, 명함이나 포스터 속에서 이상향을 바라보듯이 시선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카메라 밖을 바라봅니다.

▶꼭 정면을 보는 사진을 명함이나 포스터에 사용해야 할 경우 혹은, 그리고 본인이 3B의 요소가 주는 매력과 멀다고 느낄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요? 최소한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웃어야 할 것 같습니다. 100년 전 영국 노동당 당수 같은 무표정한 표정은 선거 필패의 요소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아무래도 지금은 유권자 우세 시장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노련한 정치인들은 신문에 실리는 사진이 찍힐 때도 시선 처리를 잘합니다. 얼굴은 정면이지만 묘하게 눈은 독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잘 보면,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이 아닙니다. 어쩌다 카메라를 본다고 하더라도 정면에 있는 사회자를 보거나 누군가와 소통하는 시선이지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는 시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 ‘나는 숨기는 게 없다, 정직한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60년도 미국 대통령 토론회에서 케네디는 닉슨에 비해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응시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고 젊은 외모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줌으로써 승리했다는 고전적 증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문화 배경이 다르다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지난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김경율 비대위원 사진을 보면서 저는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사진에 붙은 설명은 이랬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팔을 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명의 중년 남성들. 두 사람의 시선은 뭔가를 강하게 말하고 있을 때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한 두 팔은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었을 때처럼 승리의 순간에 어울립니다. 일반적인 행사 사진과는 거리가 있어 좀 더 로우키(low key)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서 독자를 바라보던 세 사람의 시선을 주제로 지금의 정치 사진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댓글로 의견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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