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크라에서 온 메시지엔… “내일도 내가 숨쉬고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8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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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기자-러시아 예술가와 1년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엮어
포격 소리 들으며 쪽잠 자야 하고, 감시 표적될까 두려움에 떠는 삶
전쟁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기록… “이곳의 끔찍함 생생히 전달되길”
◇전쟁이 나고 말았다/노라 크루크 지음/장한라 옮김·132쪽·2만1000원·엘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속의 나날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사는 기자 K가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의 풍경을 그린 삽화. 창밖에서 폭격기가 격추돼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하고 있고, 
길거리엔 탱크가 지나가고 있다. K는 이 무렵 저자에게 “우리는 아직 아이들과 같이 키이우에 있다. 아이들이 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위쪽 사진). 예술가 D가 사는 러시아 곳곳에 “우리는 우리 것을 저버리지 않는다”란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는 풍경을 그린 삽화. 포스터 문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D는 저자에게 
“이민을 가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공공장소에서 본 바로 이 포스터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 제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속의 나날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사는 기자 K가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의 풍경을 그린 삽화. 창밖에서 폭격기가 격추돼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하고 있고, 길거리엔 탱크가 지나가고 있다. K는 이 무렵 저자에게 “우리는 아직 아이들과 같이 키이우에 있다. 아이들이 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위쪽 사진). 예술가 D가 사는 러시아 곳곳에 “우리는 우리 것을 저버리지 않는다”란 문구가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는 풍경을 그린 삽화. 포스터 문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D는 저자에게 “이민을 가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공공장소에서 본 바로 이 포스터 때문”이라고 했다. 엘리 제공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지금 전쟁이 벌어지는 거라고 얘기했다.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사는 기자 K)

“여기서는 자유롭게 숨을 쉴 수가 없다. 사람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살아간다.”(러시아 예술가 D)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 독일의 작가이자 삽화가인 저자는 두 나라에 사는 두 친구가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사는 러시아 출신 기자 K가 안전하게 살아 있는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예술가 D가 ‘푸틴의 러시아’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온라인으로 딱 한 번 접촉했던 이들이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에 보낸 안부 문자 한 통으로 이 책은 시작됐다.

돌아온 답장 속엔 전쟁이 뒤바꿔버린 두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K는 폭격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취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동료들이 살해당했고, 기차역과 거리엔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정처 없이 떠돌았다. 이 전쟁을 반대하는 D는 푸틴 정부가 자신과 가족을 감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숨죽이며 살아갔다. 혹시라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D의 생각을 경찰에 알릴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불신의 나날이 이어졌다. 가장 사적인 문자메시지에 전쟁이 불러온 여파가 생생히 전해진 것이다.

그날 이후 저자는 1년간 두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엮어 그림책을 펴냈다. 두 사람이 보내온 문자와 함께 자신의 그림을 담았다. 책을 펼치면 왼쪽엔 K의 나날이, 오른쪽엔 D의 나날이 동시에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개인들의 사적인 발화가, 이 전쟁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전쟁이 일상에 끼치는 끔찍한 여파를 이해하게 해주는 정서적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왼쪽 페이지엔 K가 사는 집 창문 너머 치솟는 불길이, 오른쪽 페이지엔 D가 사는 러시아 곳곳에 나붙은 전쟁 지지 포스터가 그려져 있다. 이 간극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군 기자로 우크라이나 현장을 취재하는 K는 온몸으로 전쟁을 겪어야 했다. 새벽엔 경보 소리에 잠에서 깼고, 거센 포격 소리 속에서 쪽잠을 자는 나날이 이어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복통을 느꼈다. “분노와 증오가 뒤섞인 고통이었다”고 K는 말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멀리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D에게 전쟁은 무기력감으로 다가왔다. 전쟁에 반대 목소리를 낸 D 주변 예술가들이 해고됐다. 전쟁 반대 시위에 나가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될까 두려웠다. 혼자서라도 러시아를 떠나고 싶지만, 가족들이 머무는 고향을 떠날 수 없음을 깨닫고 만다.

직업도, 사는 지역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전쟁 이후 미래를 빼앗겼다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이 벌어진 지 35주가 흘렀을 때 K는 “요즘 누군가 미래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만약 우리가 살아남는다면’이란 표현을 사용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D는 52주가 지났을 때 “이 전쟁 때문에 미래를 떠올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잊고 말았다”고 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점은 있으나 D와 K 모두가 전쟁의 목격자”라며 “이 전쟁에서 인간이 치르고 있는 희생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런 개인적인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썼다. 원제는 ‘Diaries of War’.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우크라이나#러시아#사적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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