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설립돼 일본에서 현대미술을 다룬 1세대 갤러리인 도쿄화랑의 공동 대표 야마모토 호즈(오른쪽)와 다바타 유키히토.
도쿄화랑은 한국 미술 관련 자료 45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화랑 일을 배우던 1970년대에 아버지가 도쿄에 있는 네즈 미술관의 고려 불상을 보라고 권하셨죠. 직접 본 뒤 고려 불상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야마모토 호즈·75)
1950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현대미술을 다룬 1세대 화랑이자, 한국 미술을 소개했던 도쿄화랑의 두 대표 야마모토 호즈, 다바타 유키히토(73)가 한국을 찾았다. 도쿄화랑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한국미술 관련 기록 4500여 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열린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형제인 두 사람은 아버지 야마모토 다카시(1920∼1988)가 세운 도쿄화랑을 2대째 운영 중이다. 동생인 다바타 유키히토는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서울 종로구의 미술관 후지시로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20일 두 대표를 만났다.
도쿄화랑은 루초 폰타나, 이브 클랭, 잭슨 폴록 등 서양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다뤘다. 이와 함께 1960, 70년대에는 비평가·이론가와 협업한 기획 전시를 다수 선보이면서 일본 현대미술의 흐름과 호흡을 함께했다. 1968년 ‘트릭 앤드 비전: 도둑맞은 눈’ 전시를 기점으로는 모노하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모노하는 자연 혹은 사물을 마주하며 발생하는 ‘만남의 미학’을 보여준 예술로, 이우환이 이론을 정립했다.
두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이우환, 다카마쓰 지로(1936∼1998) 등 모노하 작가들이 서로 철학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야마모토는 “이우환과 다카마쓰가 영향을 받은 회화 작가 사이토 요시시게(1904∼2001)도 중국 철학을 공부했고, 이우환은 다카마쓰와 아틀리에에서 논어 연구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미술가 세키네 노부오(1942∼2019)가 이우환이 쓴 평론 ‘존재와 무를 넘어서’를 보고 신주쿠의 찻집에 직접 이우환을 데려가서 모노하 작가들에게 소개해주었다는 이야기도 해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바타는 “이우환을 비롯한 모노하 작가들은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까지 쓸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경우”라고 했다.
1970년대 도쿄화랑은 윤형근, 김창열, 김환기, 박서보 등 한국 작가의 개인전도 열었다. 야마모토는 “아버지가 고미술상에서 일할 때부터 조선 시대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후 갤러리를 열고 서양 외에서 가능성을 찾기 위해 아시아를 다니다가 본인의 취향에도 맞고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본 한국 작품을 다루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도쿄화랑은 2019년에 한국 작가들의 전시 사진, 리플릿, 도록 등 4200여 점을, 지난해에는 도쿄화랑의 역대 전시 리플릿 등 3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각각 기증했다. 한국 작가들과 화랑이 주고받은 서신 자료도 포함됐다. 1973년 이우환의 전시 리플릿은 선과 점이 그어진 그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어떤 작품이 전시되었는지 상세하게 기록된 데다 사진도 다수 남아 있어 향후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바타는 “아버지가 오래전부터 한중일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애쓴 노력이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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