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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발레리나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닌”…드래그퀸이 된 ‘모어’의 20년

입력 2022-04-27 17:29업데이트 2022-04-2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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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기 양주시 집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15-1번’ 45분 후 도착. ‘360번’ 55분 후 도착. 서울 지하철 3호선 지축역에서 그의 집 앞 정류장인 청암민속박물관행 버스는 올 생각을 안했다.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서 좀 늦을 듯 합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 너머 목소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분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운전해서 오는 거 아니었어요? 여길 대중교통으로 오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랬다. 이태원 클럽 트랜스의 간판스타인 20년 경력의 드래그퀸 아티스트 모지민 작가(44)의 집은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버스의 배차간격은 기본 30분이었다. 택시는 오지 않았다.

22년 경력의 드래그퀸 모지민 작가. 모지웅 제공.


●“내 삶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 불행이었다”
‘대중교통 타고 오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아연실색하던 그도 운전면허가 없었다. 모 작가는 서울 아무 곳이나 찍어도 기본 한 시간 반, 왕복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스마트폰 메모 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글의 초안 90% 이상은 스마트폰으로 작성됐다. 누드모델을 하러 한국예술종합학교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드래그쇼를 위해 이태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고통과 찬란함이 교차했던 삶의 조각들을 모은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은행나무)를 8일 펴냈다. 그는 ‘모어’(MORE), 또는 ‘모어(毛魚)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19일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제 말이 좀 느닷없잖아요. 아름답게 가다가 뜬금없는 표현이 나오고, 이 세상에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각 잡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글이 안 나온다고 할까요?”

은행나무 제공.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남자의 몸에 발레리나를 꿈꿨던 그가 학교와 사회에서 받았던 차별, 음지에 숨어 일하는 것이 싫어 성전환 수술을 포기했던 20대 초반의 아픔, 군대 면제를 받기 위해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을 받고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던 지난한 전쟁들이 담겼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반‘이란 범주에서 한참 벗어났던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모 씨 집안의 셋째는 애미의 뱃속에서부터 구더기를 씹어 먹고 치부를 달고 세상에 기어 나왔다. 이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 불행이었다.‘

“어렸을 땐 호모새끼라 놀림 받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매일 맞았어요. ’대학교는 다르겠지‘란 기대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가 ’여자인 척 하지 마라‘며 뺨을 때려서 제가 날라 갔어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통 받나‘ 싶었어요. 20대 초반까지는 당연히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적 발레리나를 꿈꿨던 모지민 작가. Nikolai Ahn 제공.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그는 드래그퀸이 됐다. 22살 되던 해인 2000년 처음 이태원 클럽 트랜스에 발을 들였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드래그퀸이 되면서 소수자 중 소수자가 됐다. 전공을 살려 발레리노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귀신이 제 머리 끄댕이를 잡고 이태원 클럽으로 데려갔다”고 회고했다. 드래그쇼를 한 세월은 그의 책에 이렇게 한 문장으로 압축됐다. ’세상으로부터 조롱당하기 위해 쥐구멍으로 들어간 20년의 세월.‘

“드래그는 엄청나게 화려하잖아요. 그렇게 꾸미기 위해 드레스와 하이힐, 가채, 장갑, 옷핀, 실핀, 바늘 하나까지 다 챙겨야 하고,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해요. 근데 변신의 가면이 주는 쾌감이 어마어마해요. 저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그게 너무 커서 죽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이렇게 애증 덩어리인 드래그쇼를 계속 하고 있네요.”

모지웅 제공.


●’변방에서 끼 떠느라 애쓴 사람‘, 모어
고통에 몸부림쳤던 날들에 대한 회고는 역설적이게도 일상의 평온에 대해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반려묘 모모와 나눈 대화가, 23년 째 함께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유년시절부터 조금은 유별났던 자신의 곁을 지켜준 부모님을 향한 감사함이. 그의 삶을 지탱하는 세 축인 반려묘, 남편, 부모님을 향한 글들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면허가 없는 남편을 향해 모 작가는 이렇게 썼다. ’꿈에라도 당신이 별안간 부릉부릉 운전해서 동해로 남해로 데려다주는 낭만은 절대 벌어지지 않겠지요. 그럼 어때요. 우리에겐 씩씩한 두 다리가 있는걸요. 우린 노인이 되어서도 팔짱 끼고 버스로 전철로 마실 나가요. 그 아름다운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남편과 결혼했던 2017년 5월 24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스스로의 삶을 ’욕창의 구더기‘라고 표현했던 그는 2019년 6월 뉴욕에서 열리는 스톤월 항쟁(1969년 미국에서 동성애자 집단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벌인 데모) 50주년 기념 공연에 초대됐다. 60년 전통의 라 마마 실험극장에서 뮤지컬 ’13 fruitcakes‘ 무대에 서 등장인물 13명 중 한 명인 ’올란도‘를 연기했다. 일본 도쿄의 한 클럽 분장실에서 찍힌 그의 사진을 보고 모 작가에게 연락한 이일하 감독은 2018년부터 3년간 그의 삶을 담아 다큐멘터리 ’모어‘(2021년)를 만들었다. 다큐는 지난해 DMZ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올해 6월 개봉한다.

”’그 시간 안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요즘 많이 해요. 삶에는 그 시간대마다 벌어지는 일이 있는 거 같아요. 그때 마다 피하지 않고 그 시간을 이 악물고 버티면 된다는 걸 마흔 다섯이 되고 깨달았어요.“

2019년 6월 스톤월 항쟁 50주년으로 초청받은 ’13 fruitcakes‘ 공연 직후. 영화 ’모어‘ 촬영 장면을 이탈리아 사진작가가 담았다. Davide Alessandro Toregrossa 제공


그의 책은 이렇게 끝난다. ’낮은 곳에서 힐을 신고/ 높은 곳에서 토슈즈를 신고/ 내일은 낮은 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내일은 높은 곳에서 모모를 만나고/ 그렇게 높고 낮은 곳에서/ 그렇게 있고 없고/ 헛헛하게 허비해진 시간/악물고 버틴 이의 시간/ (중략) 무언가/ 그 시간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다면/ 그 아래 서슴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삶의 높고 낮음을 묵묵히 지나온 그는 시련 속에서도 비상할 기회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죽어서 ’변방에서 끼 떠느라 애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동네 주민들에게 책을 드렸어요. 60살이 넘은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언니라고 불러”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을 한 번이라도 보셨을까요? 제 성정체성과 제가 하는 예술은 너무나 변방에 있잖아요.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저를 알아봐주고 책으로, 영화로 내 주시는 게 신기해요. 요즘은 그 변방의 삶이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 같아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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