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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가벽대신 공-폐기물 쌓아놓고 자아비판…지속가능한 미술관을 위하여

입력 2022-01-16 13:47업데이트 2022-01-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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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한다. 990~1600㎡ 규모의 전시라면, 평균 5~7t의 폐기물이 나온다. 대개 가벽에 쓰이는 석고보드, 합판, 철골이나 전시 설명란을 만들 때 쓰이는 플라스틱이다.

최근 전시 흐름을 보면, 방대한 폐기물에 대한 국내 미술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에 전시 폐기물을 늘어놓으며 문제점을 고발하거나, 전시 공간을 디자인할 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식으로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공간 속에 대입하고 있다.

●전시 디자인에 환경을 담다
그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지의 시간’(~2.27)은 생태에 대한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낸 전시 공간이다. 전시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웬 커다란 공이다. 작품은 아니다. 이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16명의 사진, 조각, 설치 등 35점이 출품됐는데, 전시장 내에 작품이나 동선을 구분하는 가벽이 없다. 미술관은 열린 공간에 작품들을 놓고 그사이에 가벽 대신 구형의 반사체 11개를 놓았다.

이 구형의 반사체는 전시 의도에 맞춰 미술관 측에서 영구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게끔 개발한 에어볼이다. 이 전시는 인간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상에 공존하고 있는 다른 생명체의 관점을 생각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성찰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전시 의도에 맞게 공간을 디자인하는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운영디자인기획관은 “자연, 환경, 동물 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전시인 만큼 전시의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며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일회적 재사용’ 방식을 넘어서, 전시 시작부터 폐기물량을 줄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어볼 안에는 공기압 자기 제어 장치가 탑재돼, 전시 동안 스스로 공기량을 줄여나간다. 마치 어떤 생명체가 소멸해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전시 종료 후 에어볼의 공기를 빼면 가로, 세로, 높이 1.5m인 상자 안에 모두 담긴다. 순회전을 하게 되거나 다른 전시에서 필요할 때면 다시 부풀려 쓸 수 있다.

에어볼은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전시장 초입에는 버려질 뻔한 옛 전시 진열장을 활용한 정소영 작가의 ‘미드나잇 존’(2021년)과 자연사박물관의 박제 동물을 사진에 담은 히로시 스기모토의 ‘디오라마’ 시리즈(1980년), 압록강 하구의 흙으로 물기를 머금은 흙 표면을 재현한 이주리의 ‘모습 某濕 Wet Matter_005’(2021년) 등이 놓여있다. 이들 사이에 놓인 에어볼은 표면이 반사 재질로 만들어져있는데, 생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각각의 작품을 한데 비추며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돼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 앞에 선 관객 또한 비춰진 작품 옆에 놓이면서 관객 스스로가 생태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혁신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재활용 방식을 택한 전시 디자인은 근래 종종 시도돼왔다. 현재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광대하고 느리게 : 권혜원, 박은태, 조은지’(~2.27) 전시는 직전 전시 ‘빈지 워칭; 14284″’ 담당 큐레이터와 논의해 목재 프레임을 재활용했다. 김현정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 준비에 필요한 건 목재 위에 덮을 천뿐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6~8월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또한 자원 소모를 최소화했다. 미술관은 전시벽면에 플라스틱 시트로 설명란을 마련하는 방식 대신 미술관이 모은 A3 이면지를 재사용했다. 잉크를 절감하기 위해 한 가지 색으로 인쇄하고, 폰트 안에 여백을 줘서 잉크 사용량을 60~70% 줄일 수 있는 에코서체를 사용했다.

●지속가능한 미술관을 위하여
“환경 위기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시대에 자원이 소비되는 미술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지난해 5~9월 이와 같이 말하면서 ‘지속가능한 미술관: 미술관 환경’ 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3t의 폐기물과 노출된 전선 등 공사 중인 듯한 전시장 풍경을 관람객에게 그대로 보여줬다. 전시 그 이면을 조명하는 일종의 자아 비판적 전시였다.

친환경적 전시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있다. 국내 미술관 중 자체 설계팀을 가진 곳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두 곳뿐이다. 두 미술관은 앞선 전시에서 설계한 구조를 다음 전시에 어떻게 재활용할지 고민하기 용이하지만, 다른 미술관들은 아니다. 각 전시별로 외주 업체를 통해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예산 문제나 회화, 조각, 설치 등 매회 달라지는 출품작 특성상 매번 전시 공간이 환경만을 고려할 수도 없다.

“현대미술이 시각적 완성도가 중요하다 보니 색상이나 형태를 두드러지게 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플라스틱, 비닐 등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기후미술관 전시 주제가 환경 이슈를 안고 있어 그 관습을 따르지 않으려 했는데, 이것도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 전시 담당 김혜진 학예연구사의 말을 보면, 대개 생태적인 메시지를 담은 전시에 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운영이 이뤄진 맥락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술관들이 점차 친환경적 매뉴얼을 만들거나 관련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 ‘친환경 인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며, 아르코미술관 역시 지난해 4월 개막한 전시 ‘그 가운데 땅: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부터 전시 설치 매뉴얼을 만들어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소해보이지만 전시 종료 후 현수막을 사용해 가방을 만드는 2019년 수원시립미술관의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등도 미술관이 환경에 대한 고민을 실천에 옮긴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더 나아가 전시 가구의 순환을 돕는 데이터베이스를 내년에 체계화해나갈 예정이다. 이제껏 미술관 측은 전시가구 리스트를 만들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내에서는 가구를 재사용해왔다. 김 기획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온라인 사이트에 재활용 가능한 가구 리스트를 모두 공개해놓고, 유관기관들에서 대여요청을 하면 양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가구의 순환 주기를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허투루 가구를 제작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새 예산을 들이지 않고 전시를 기획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 미술관은 올 6~10월 ‘MMCA 다원예술 2022: 탄소 프로젝트’를 열고 국내 박물관과 미술관의 설계팀원들이 겪는 현실적인 한계를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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