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美 외교는 왜 30년간 실패를 거듭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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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의 대전략/스티븐 M 월트 지음·/김성훈 옮김/432쪽·1만6000원·김앤김북스

“국가건 사람이건 ‘갑질’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를 자제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원 국제정치학 강의시간에 지도교수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타자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힘을 ‘권력’이라 정의할 때, 이를 필요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관계의 파탄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컨대 대제국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도 주변 속주에 대한 과도한 개입 때문이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대가인 스티븐 월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요지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저자는 탈냉전 후 자만심에 빠진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같은 자신만의 원칙들을 개도국에 이식하려는 이른바 ‘자유주의 패권’에 몰입해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는 미국 국력의 쇠퇴와 실험 대상국의 민주주의 후퇴였다. 천문학적 전비를 쓰고도 미군 철수로 이어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지난 30년간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가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국무부 등 외교안보 관료와 정치권, 학계, 언론, 이익단체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유주의 패권 정책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결책으로 전통적인 현실주의 외교술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그중에서도 특히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한다. 역외균형이란 슈퍼 파워(미국)가 중국 같은 지역 패권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동맹에 힘을 실어주되, 평상시엔 개입을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는 전략이다.

이 대목은 한국의 국익과도 직결된다. 저자가 강조하듯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역외균형 전략의 핵은 동아시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중 견제의 허브는 미일동맹이겠지만 한국에도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보호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할수록 중국의 변덕에 놀아날 위험이 커진다”고 쓴 저자의 경고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외교#미국#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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