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채운 세로화면, 떨리는 동공이 천장으로… 단숨에 빠져든 3분

김재희 기자 입력 2021-05-14 03:00수정 2021-05-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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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한예종 ‘세로형 쇼트폼’ 9편 프로젝트 진행 이승무 교수 인터뷰
“세로 영상, ‘1인칭 서사’ 선호에 맞아
짧은 길이, 인터랙티브물에도 적합
1분짜리 수백편 모아 장편 만들수도”
10일 틱톡에 공개된 쇼트폼 세로형 영상 ‘고개 들지 마’의 한 장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이 만든 약 3분 분량의 이 영상은 공개 사흘 만에 6만8000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틱톡 화면 캡처
밤샘 작업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찬물로 씻어내려고 화장실에 온 여성. 혼자뿐인데 어디선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조심스레 샤워실 문을 열자 김이 서린 거울에 누군가 손가락으로 쓴 글씨가 적혀 있다. ‘고개 들지 마.’ 공포물 주인공은 하지 말라면 더 한다. 화면을 꽉 채운 여성의 떨리는 동공이 서서히 위를 향하고, 그의 눈을 따라 관객의 시선도 천장에 가닿는 순간. 거꾸로 매달린 귀신이 그를 덮친다.

10일 동영상 플랫폼 틱톡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세로형 쇼트폼(재생 시간이 10분 안팎으로 짧은 형태) 콘텐츠 9편을 틱톡에 공개했다. 산학협력 프로젝트 ‘세로 시네마 쇼케이스’의 결과물이다.

이 중 ‘고개 들지 마’는 주인공 홀로 남겨진 건물에 귀신이 나타나는 이야기로, 세로형 동영상의 강점을 살렸다. 위를 올려다보면 안 된다는 압박, 그럼에도 천장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카메라 앵글이 따라간다. 수직 구도는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한 이승무 한예종 교수(58·영화감독·사진)를 10일 화상으로 만났다.

콘텐츠 업계는 세로형 영상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카카오M은 지난해 ‘페이스아이디’ ‘톡이나 할까’ 등의 예능을 세로형 영상으로 선보였다. 애플은 아이폰11 프로 출시 홍보를 위해 세로형 영화 ‘스턴트 더블’을 제작했다. 세로형 영상의 강점은 인물 중심의 서사에 용이하다는 것. 이 교수는 “가로형 영상은 공간과 인물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라며 “세로형은 낭비되는 공간 없이 한 사람만 앵글에 담아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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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서사를 선호하는 젊은층의 성향에도 잘 맞는다. 이번 프로젝트의 영상 9편도 한두 명만 화면에 담는 구도를 취하고 있다. 화면에 꽉 찬 인물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노라면 이들과 직접 마주한 느낌마저 든다.

쇼트폼 콘텐츠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웹드라마 제작사인 플레이리스트, 와이낫미디어 등이 15분 내외의 영상을 선보인 5년 전만 해도 쇼트폼은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심심풀이용 오락물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시리즈물이나 시청자가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해 결말을 달리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물로 발전하고 있다. 이 교수는 13회로 구성된 시리즈물 한 편과 인터랙티브물 두 편을 올 하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1, 2분짜리 수십, 수백 편이 모여 120분짜리 영화 분량의 서사를 보여주는 시리즈물 제작이 가능하다”며 “다만 초단편에 기승전결을 모두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랙티브물은 쇼트폼 콘텐츠가 특히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다. 그는 “기존 영화나 드라마처럼 긴 영상에 인터랙티브를 적용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쇼트폼은 수천 가지 선택지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 말했다.

모바일이 대세인 만큼 이에 잘 맞는 쇼트폼 콘텐츠가 더 유리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클래식의 최대 적은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며 자란 세대가 2시간 내내 클래식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앞으로 콘텐츠는 짧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들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세로화면#이승무교수#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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