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영화제 수상’ 김기덕, 20일 환갑 앞두고 코로나로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1일 22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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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동아일보DB
김기덕 감독. 동아일보DB
11일 라트비아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숨진 김기덕 감독(60)의 삶은 명예와 불명예의 줄타기였다.

‘사마리아’로 한국 영화 최초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2004),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2011), ‘피에타’로 베네치아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2012)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했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거장이 됐지만 2018년 발생한 ‘#미투’ 논란으로 도덕적 위상이 추락한 끝에 해외에서 숨을 거뒀다.

김 감독은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말할 만큼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구로공단과 청계천 일대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30대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프랑스로 3년간 파리에서 미술관을 전전하고 독학으로 길거리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무명 화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에 빠졌다.

귀국한 뒤 1995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저예산영화 ‘악어’로 데뷔한 뒤에도 ‘비주류’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시류와 대세를 추종하기보다 예술영화의 외길을 고집했다. 자신이 영화가 국내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칩거하기도 했다.

‘사마리아’의 베를린 영화제 수상 이후 유럽에선 호평의 연속이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아리랑’이 칸에서 수상하자 국내 영화계 주류에서도 주목받았다. ‘피에타’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충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여성에 대한 가학적 장면을 끝까지 거칠게 끌고 가는 연출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일쑤였다. ‘나쁜남자’(2002) ‘섬’(2000) 등 성매매와 폭력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된 여성과 남성 조폭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여성단체의 비판을 자주 받았다.

김 감독은 2018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A 씨로부터 자신의 뺨을 때리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연기를 요구했다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김 감독을 폭행 혐의로 벌금 500만 원 약식 기소했다.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김 감독은 A 씨와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올 10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다.

#미투 논란이 불거진 뒤 김 감독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 현지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영화 활동을 지속했다. 지난해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카자흐즈탄에서 촬영한 영화 ‘딘’을 칸 영화제 바이어에게만 공개하는 등 해외 활동만 간간이 이어갔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감독이 미투 의혹이 터지고 동유럽으로 떠난 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는 연락을 모두 끊었다”며 “20일 환갑을 맞는 그를 위해 현지 영화인들이 에스토니아에서 김 감독 영화 기념 상영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타지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으로 한국영화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기 전까지 해외에서 그 누구보다 인정받았던 감독”이라며 “한국 영화를 빛낸 감독 중 하나였다”고 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정보도문

본보는 2018. 6. 3. <김기덕 감독, 자신을 고소한 여배우 무고죄로 맞고소>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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