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딱 한 장의 LP ‘절대 희귀음반’을 잡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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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0일 화요일 비. 절대희귀음반.
#333 Devil Doll ‘The Mark of the Beast’(1988년)
 
음악이란 본디 실체가 없는 시간적, 청각적 예술이다. 그의 운명이란 그저 무형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가끔 그것을 둘러싼 껍데기에 과도하게 열광한다.

LP레코드 붐이 몇 년째 이어진다. 수요는 높은데 공급은 낮으니 절판된 고 김광석(1964∼1996) 4집의 경우 100만 원을 호가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중고 LP는 뭘까. 2017년 고 프린스(1958∼2016)의 LP 한 장이 온라인에서 4만2298달러(약 5050만 원)에 팔렸다. 저 악명 높은 ‘The Black Album’. 1987년 12월, 열 번째 정규앨범이 돼 나올 운명이던 이 음반은 당시 프린스의 변덕으로 공개가 갑자기 무산됐다. ‘이 앨범은 사악한 앨범’이라는 무슨 종교적 계시를 받은 프린스가 초판 50만 장을 출하 직전에 전량 폐기하기로 한 탓이다.

비밀이란 원래 엄청날수록 지키기 힘들다. 당시 홍보용 음반을 받은 관계자 몇 명, LP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몇 명이 폐기 약속을 저버리고 몰래 이 판을 간직했다. 이렇게 생존한 판은 극소수. 2018년 온라인 시장에서 2만7500달러(약 3282만 원)에 거래된 판은 캐나다 토론토의 전직 LP 공장 직원이 31년이나 간직한 비밀이었다.

전 세계에 다양한 희귀음반이 존재하지만 그중 ‘끝판 왕’을 말하려면 슬로베니아 밴드 ‘데블 돌’을 불러야 한다. 1987년 아직도 ‘미스터 닥터’라고만 알려진 불가사의한 인물이 유고슬라비아(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데블 돌을 결성했다. ‘악마인형’이란 팀명처럼 이들의 음악은 가히 청각적 공포영화다. 여러 악기가 중첩하며 짓는 불길한 화성 진행 위로 보컬이 밤의 악령처럼 속삭이거나 포효한다. 듣다 보면 심야에 폐관한 극장을 터덜터덜 걷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요즘 아이돌 세계관은 세계관도 아니다.

우리의 ‘박사 씨’(미스터 닥터)는 희귀 아이템이란 게 뭔지도 정확하게 아는 양반이다. 1989년 첫 앨범 ‘The Girl Who Was… Death’(사진)를 내며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실은 이게 두 번째 앨범이다.” 실은 그 전해에 진짜 첫 앨범인 ‘The Mark of the Beast’를 제작했는데 딱 한 장만 LP로 찍어 자기 집에 보관 중이라는 설명이다.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아이디 ‘Mr. Doctor’로 고가 음반을 거래하려는 이가 있다면 주의할 일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lp레코드#희귀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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