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영화평론]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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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소감 - 김예솔비 씨

직시하고 관조하며 넋 놓고 바라봅니다


김예솔비 씨
김예솔비 씨
마감일에 원고를 부치고 극장에 갔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한다는 대만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어떤 일이 막막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워서 결말을 유예하는 쪽을 택했다. 내 세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모든 해프닝들과는 무관하게, 나는 습관처럼 수첩과 펜을 들고 극장에 갈 거라고.

많은 영화들에 빚을 지고 있다. 비밀처럼 꺼내어 보던 영화들. 스무 살에는 무의식적인 척력으로 사람들을 많이 밀어냈고 필연적으로, 자주 낮아졌다. 바닥을 가늠하기 위해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혼잣말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용기 내어 던지는 대화에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응답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평론 강의를 해 주셨던 정한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탈속만이 본질이라고 믿으며 글을 멀리했던 내게, 글과 나 사이의 소중한 접점 같은 것도 있다고 평론과 들뢰즈라는 세계를 통해 알려 주셨다. 꿈결 같았던 수업 이후 일 년 동안 잔상 속에서 읽고 보고 쓰면서 지냈다. 당선 소식을 들은 날에는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의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함께 기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다시 모호한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밀이 일상처럼 흐르는 암실 안으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섬광처럼 스치는 진실을 믿는다. 찰나를 기다리는 사진가의 근력으로 써 나가겠다. 직시하면서 관조하면서 때로는 방관에 가까운 방식으로 넋 놓고 바라보면서.

△1995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심사평

남한산성속 ‘삶과 죽음’ 치밀한 논리로 풀어


김시무 영화평론가
김시무 영화평론가
영화평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이론 및 미학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지식도 겸비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력도 있어야 한다. 평론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장력은 기본이다.

올해 응모작은 38편이었다. 문제적 사극 ‘남한산성’과 실화에 바탕을 둔 ‘택시운전사’를 다룬 글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문도 있었다.

눈에 띄는 응모작은 5편이었다. ‘택시운전사’를 다룬 ‘역사는 어떻게 집단기억이 되는가’는 적절한 인용을 통해 설득력 있게 논지를 전개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초창기 영화의 이미지에 빗대어 다룬 ‘0과 1이 된 링컨과 릴리안 기쉬’는 응모자의 전문성이 엿보이는 글이다. 서사가 거의 없는 독립영화 ‘더 테이블’을 짐작의 사유로 분석한 ‘언어보다 강한 침묵’은 그만큼 분석력이 돋보였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사유하는 법’은 문제의식은 좋았지만 다소 산만한 게 흠이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시간의 관점에서 분석한 ‘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황동혁의 ‘남한산성’이 시간을 은유하는 방식’까지 이들 5편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불가능의 미메시스: 무수한 지금들의 투사’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남한산성’을 오늘날 정치적 상황 및 현실에 빗대어 분석하는 글들은 많이 있었지만, 시간을 화두로 삼아 극한 상황 속 삶과 죽음의 문제를 치밀한 논리로 풀어가고 있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매우 안정적인 문장으로 글을 전개하고 있어 평론가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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