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연주자-교수 1인 3역 맡은 그녀… “힘든 만큼 많이 배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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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리사이틀 갖는 피아니스트 백혜선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내년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그는 “음악인으로 한 단계 더욱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니스트 백혜선은 내년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그는 “음악인으로 한 단계 더욱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애를 키우다 보니….”

음악가의 입에서 음악보다는 ‘애’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다. “어쩔 수 없죠. 애를 누가 키워요? 제가 키울 수밖에. 한국에서 애를 키우며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어요.”

피아니스트 백혜선(52)은 엄마이자 교육자이자 연주자다.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1인 3역을 해내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수님이란 호칭을 듣는 것이 여전히 어색할 때가 있어요. 아직도 학생 같은 기분이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여자의 삶을 살면서 연주를 계속 해나가기도 쉽지 않아요. ‘난 왜 이렇게 편하지 못한 삶을 살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질문을 계속 저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어요.”

백혜선의 음악 인생은 초반부터 탄탄대로였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1위 없는 3위를 비롯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잇달아 입상했다.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 EMI와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1995년에는 29세의 나이로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연주하면서 두려움이 컸어요. 이렇게 쉽게 올라가도 되는지, 이렇게 올라가서 꼭짓점을 치면 내려가는 길만 남은 건 아닌지 불안했어요.

제가 너무 쉽게 포장되는 것을 보며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죠.”

2005년 서울대 교수 자리를 내놓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살며 현재 15세, 13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독주회 등 연주활동을 하면서 2013년부터는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초의 동양인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엄마라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 인생에서 아이와 음악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걸요. ‘보통의 삶을 사는 내가 연주인 맞아?’라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경험하고 고민했고, 따뜻함과 소통의 길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는 10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큰 공연장 무대에 서는 것은 4년 만이다. 베토벤과 리스트의 작품으로 공연을 구성했다.

“노력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죠. 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매일매일 힘들게 살아왔어요. 무섭고 두렵지만 해봐야죠. 음반 작업도 다시 해보고 싶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피아니스트 백혜선#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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