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노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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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해 터울의 학교 후배 두 명과 고기를 구워 먹었다. 초등학교 들어갈 아들 딸 조카 얘기를 나누다가 최근 받은 건강검진이 불판에 올랐다.

“시력이 확 떨어졌어.”

“어, 나도 그렇던데.”

“우리도 노안이 시작된 거야.”

웃기는 소리를 한다며 나무랄 선배들도 있겠지만 건강 관련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30대 후반부터 눈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미 마흔의 경계선을 넘은 지 오래이니. TV와 베갯머리 스마트폰을 좀 더 일찍 끊을 걸, 부질없는 후회를 공유했다. 에이, 한잔하자. 아, 술도 눈 건강에 안 좋다던데.

업무와 개인적 사연이 겹쳐 오랜만에 책을 다시 가까이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력 감퇴를 실감하고 보니, 참말로 어느 것 하나 여유로울 때 미리 해놓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잘도 버티고 살아왔구나 싶다.

보는 눈이 나빠져서인지 이번 주 책면 선정에 이런저런 헛디딤이 있었다. 오래전에 이미 초판을 내고 재발매한 책을 리뷰 대상으로 잡았다가 뒤늦게 교체했고, 한 극지탐험가의 육성 녹음을 녹취해 엮은 책을 거듭 들추다가 중반부 한 구절에 마음이 상해 밀어내버렸다.

“개썰매를 몰다 보면 채찍으로 눈을 맞아 실명하는 개가 나온다. 하지만 극지 생활에서 그건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으므로 썰매개들을 향해 거칠게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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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밀어 놓고 나니 이 내용에 반감을 갖는 게 과연 정당한 판단인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극지 탐험에 대해 아는 바 한 톨 없으면서 얕은 감상으로 함부로 판단한 게 아닌지.

마음에도 노안이 온 걸까. 또렷한 게 드물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시력#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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