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 폐공장·허름한 동네가 ‘핫 플레이스’로 뜬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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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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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TREND INSIGHT’

서울 성수동의 대림창고, 부산의 고려제강 폐공장, 그리고 제주도의 전분공장. 이들은 모두 낡은 창고나 폐공장이 멋진 카페가 된 사례다. 서울 문래동 대선제분 밀가루공장에서는 패션쇼와 자동차 브랜드 런칭쇼가 열리고, 성수동 대림창고에서는 명품브랜드 런칭쇼와 다양한 브랜드 파티가 열린다. 예전 같으면 특급 호텔에서나 했을법한 행사들을 왜 낡고, 오래돼 쓸모없어진 공간에서 하는 걸까?

흔한 공간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지 않기 때문이다. 크고 번듯한 컨벤션센터, 번쩍번쩍하고 화려하게 지은 건물, 비싼 특급호텔의 화려함은 이젠 너무 흔하다 못해 식상하다. 새것이 난무하는 시대에 오히려 낡은 것이 가진 희소성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뭐든 낡은 건 부수고 새로 짓고, 화려하고 번듯한 건물을 세우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낡은 것이 가진 세월의 흔적과 역사 자체가 훌륭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부동산경기침체가 준 전화위복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 재개발이 이뤄졌다면 아마도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낡은 건물을 재활용하는 도시재생이나, 공간에서의 빈티지가 유행하는 건 뉴욕, 런던, 파리 등 선진국 대도시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난 유행이다. 이들 도시에는 수백 년 된 건물들 사이사이에 최신 건물들이 공존한다.

우리도 오래된 옛 건물들을 다 쓸어버리기 전에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아무런 세월의 흔적 없는 유리와 콘크리트로만 가득한 도시가 될 뻔 했다. 인스턴트가 가지는 깊이 없는 맛으론 결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 수 없다.

요즘 허름하고 낡은 동네가 뜨는 덴 다 이유가 있다. 핫플레이스를 주도하는 건 ‘힙스터’와 ‘트렌드 세터’다. 힙스터는 유행에 무신경하다. 남이 뭘 입고 쓰건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자기만의 취향과 소신이 있다. 이들의 취향이 보편적 대중에겐 새로움이자 개성이다. 비주류가 가지는 희소성의 매력에 사람들이 주목한 것이다.

반대로 트렌드 세터는 남들이 맛보기 전에 먼저 맛보는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새로운 것에는 과감하게 도전한다. 트렌드 세터가 선택한 것 중 대중이 받아들일 여력이 있는 쉽고 적당히 싼 것들이 유행을 타기 쉽다.

사실 힙스터와 트렌드세터는 다른 듯 비슷하다. 둘 다 남의 트렌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 차이라면 누군 깊이 파고들고, 누군 앞장선다는 점이다. 둘 다 이 시대의 대중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런데 지금 이들 모두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낡고 허름한 동네다.

힙스터는 뭔가 재미있는 건 저지르고 싶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대개 개발이 덜된, 상대적으로 싼 동네에서 논다. 기존 핫 플레이스 인접권에 있는, 상대적으로 싼 동네를 선호한다는 것. 압구정동에서 놀던 이들은 건물 임대료가 오르자 가로수길을 거쳐 강 건너 한남동으로 옮겼고, 청담동에 모여 있던 이들은 다리 건너 성수동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카페를 만들고, 그래피티도 칠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렇게 다른 동네엔 없는 개성적이고 흥미로운 컨텐츠로 가득한 동네를 만든다. 그리고 이걸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게 요즘 핫플레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힙스터에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에디터 등이 많다. 트렌드 세터에도 크리에이터, 에디터들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은 새로운 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에 돈이 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트렌드 세터 중에는 부잣집 아들, 딸이나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많다. 이들은 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전파한다.

허름한 동네가 핫 플레이스가 되면 웅크리고 있던 건물주들이 득세한다. 허름하던 동네였을 때는 누가 들어오기만 해도 감사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갑질’을 한다. 순식간에 임대료가 몇 배로 오른다.

하지만 너무 비싸지면 핫 플레이스의 핵심 콘텐츠 제공자들인 힙스터들이 못 버틴다. 결국 그 동네를 띄운 힙스터들과 크리에이터들이 밀려난다. 이런 현상을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을 쫓아낸 건물주들은 계속 해피할 수 있을까? 개성 있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그 동네를 핫 플레이스로 만든 핵심인데, 그 세력이 빠져나가면 남는 건 유흥과 쇼핑 정도다. 몇 년은 인기를 이어가겠지만 점점 식는다. 건물주의 탐욕이 과하면 결국 머지않아 급락하는 임대료를 경험할 게 뻔하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대표적인 곳이 이대 상권이었다. 한번 떠난 소비자를 다시 데려오는 건 힘들다. 핫 플레이스가 영원하지 못할 테니 잠시 물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심정으로 최대한 많이 뽑아먹으려고 임대료를 올리는 이들은 생각이 짧은 것이다.

지속가능한 핫 플레이스가 조성되면 그건 곧 ‘스테디 플레이스’가 되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힙스터들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건물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준 힙스터나 크리에이터들의 도전이 없었다면, 그저 뜨기 전의 낡고 시시한 건물의 소유주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
#김용섭#폐공장#핫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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