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 드러낸 듯한 기괴한 형상

  • 동아일보

在佛화가 민정연展

벽면의 그림으로부터 뽑아내듯 만든 레진 조형물 뒤에 앉은 민정연 씨. 기억의 파편이 뒤엉키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벽면의 그림으로부터 뽑아내듯 만든 레진 조형물 뒤에 앉은 민정연 씨. 기억의 파편이 뒤엉키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결혼을 하고 4년 전 첫아이를 출산한 뒤 떠올린 이미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질투심이 돋아나더라. 나는 결코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개인전 ‘공간의 기억’을 여는 화가 민정연 씨(37)가 2013년작 아크릴화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거품인 듯 버섯인 듯 뭉실뭉실 돋아나 뭉쳐 엉긴 정체불명의 개체. 설명을 듣고 보니 ‘질투심을 형상화한다면 저런 모양새일 수도 있겠거니’ 싶어졌다.

 민 씨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200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죽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현실적 형상을 세밀하게 묘사해 낯선 공간 이미지를 구축하는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한 가지 뚜렷한 변화는 기괴한 모습의 공간 속에 드문드문 포인트로 박아두던 사람의 모습이 언제부턴가 사라진 점이다.

 “파리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내 그림을 보고 ‘예쁘게 잘 그려놓은 벽지’라고 지적했다. 무엇을 표현하려 한 건지 스스로 품은 목적이 불분명하다 보니 과감함이 결여됐다는 얘기였다. 충격 먹고 꽤 오래 고민에 빠졌다.”

 그림을 관람하는 이의 시선을 끌기 좋은 요소였던 작은 사람의 모습을 캔버스에서 지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니 그저 ‘흥미로운 배경’이었던 부분이 작품의 고갱이로 떠올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심이었던 것이 배경에 미뤄졌던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신작의 주제는 ‘기억의 균열과 재구성’이다. 결혼하고 프랑스 남부로 거주지를 옮기며 떠올린 이야기를 담았다.

아크릴화 ‘어머니의 초상’(2015년). 공근혜갤러리 제공
아크릴화 ‘어머니의 초상’(2015년). 공근혜갤러리 제공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은 삶의 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는 이사(移徙)와 닮았다. 옮겨 사는 삶 뒤에 남겨진 기억의 조각이 어떻게 재조합되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지층의 단면이 일그러져 뒤집히는 듯 보이는 그림의 제목은 ‘어머니의 초상’이다. 좋은 어머니이기 위해 욕망을 억누르는 마음의 이면(裏面)을, 내 자식 낳고 나서야 헤아리게 됐다.” 02-738-7776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민정연#공간의 기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