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연한 영혼의 목소리로 상처입은 삶을 구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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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수상]‘채식주의자’ 등 한강의 작품세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상재한 이래 한강은 내밀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일상을 냉철하고도 곡진한 시선으로 응시해왔다. 세 권의 단편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는 동안 그녀는 맹목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고집스럽고도 끈질기게 생의 본질적 고통에 천착해 왔는데, 상처와 아픔의 편린으로 쌓아올린 그녀의 소설 세계는 실로 장인의 것으로 평가할 정도의 높은 밀도를 이루고 있다. 그녀가 고통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그녀의 삶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진정성과 깊이 있는 통찰로 가득하다.

문체가 특별하다는 말은 작가에게 바치는 다소 상투적이고 맥없는 칭찬같이 들리는 감이 있지만, 한강의 소설에 대해서라면 이 말은 그 자체로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진실에 가깝다. 1993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시인으로 데뷔하고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낸 이력이 보여주듯, 시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섬세하고도 단단한 문체는 상처 입은 영혼의 목소리를 선연하게 되살리는 한강 소설의 미학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인 언어와 결합한 그녀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는 일과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그녀의 오랜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그녀의 소설은 치유나 위로를 섣불리 말하기에 앞서 참혹하기 그지없는 삶의 맨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지막하지만 힘 있게 강조하는 것이다.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소설 세계에서 하나의 이정표이자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 편의 중편소설로 엮인 이 아름답고도 섬뜩한 연작 소설집은 한강의 소설 중에서도 탐미적인 성격이 가장 짙다.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폭력과 광기 어린 욕망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정상’이라는 미명 아래 영혜의 삶을 부정하고 그녀의 일상을 포박하려는 주위의 탄압을 냉정하게 기록하는 한편 그와 같은 폭력에 맞서는 영혜의 식물적인 관능성을 환상적이고도 섬뜩한 필치로 그려냄으로써, 한강은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인 영혜를 통해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삶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채식주의자’ 이후 한강은 개인의 구원과 역사의 화해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촉망받는 화가의 의문사를 추적함으로써 진실한 삶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려는 작가의 강렬하고도 절실한 의지를 표현했다면, 최근작 ‘소년이 온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 잠들어 있는 망각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역사를 증언하기 위한 윤리적, 정치적 상상력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한 바 있다. 앞으로도 더 넓어질 것이 분명한 한강의 소설 세계야말로 한국 문학의 현재성과 동시대성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깊이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채식주의자#한강#맨부커상#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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