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찰나의 기록, 그 안에 담긴 영원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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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커리/스티브 맥커리 지음/박윤혜 옮김/264쪽·8만 원·시공아트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맥커리, 분쟁 지역·투쟁의 순간을 담은
30여년간의 작품 이야기 모아

1983년 홍수가 난 인도 서부 포르반다르 지역에서 활약하는 스티브 맥커리. 그는 피사체에 가깝게 갈수록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생생한 보도 사진을 얻기 위해 언제나 위험한 현장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Steve McCurry/Magnum Photos
1983년 홍수가 난 인도 서부 포르반다르 지역에서 활약하는 스티브 맥커리. 그는 피사체에 가깝게 갈수록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생생한 보도 사진을 얻기 위해 언제나 위험한 현장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Steve McCurry/Magnum Photos
사진을 잘 찍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피사체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은 사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은 30대 중반에 세계적 보도사진 작가그룹 ‘매그넘’의 회원 후보 자격을 얻었던 스티브 맥커리(65)의 사진집이다. 부제는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이 책은 한마디로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범이다. 한국 사진작가 중에는 아직 매그넘 회원이 없다.

1950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역사와 영화예술을 전공했다. 1978년 28세의 그는 2년간 지역 신문의 사진기자 생활을 끝내고 프리랜서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듬해 그는 아프가니스탄 반군 캠프에 들어가 4년간 내전의 참혹한 모습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렸다. 당시 반군 지도자와 소년병들은 총을 든 채 그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는 망원렌즈보다 작고 가벼운 렌즈들을 주로 사용했다. 그만큼 피사체에 가까이 가 있다는 의미다.

맥커리를 유명하게 만든 사진은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1985년 6월호 표지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난민캠프에 피신한 아프간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 사진이다. 수소문 끝에 17년 후인 2002년 그는 소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한 살배기 딸과 카메라 앞에 예전의 포즈로 섰다. 비슷한 빛의 조건에서 같은 색 옷을 입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에 입꼬리는 처지기 시작했다.

사진은 누군가의 불행을 기록할 뿐 해결하지는 못하는 걸까. 그녀가 난민촌에서 나와 좋은 남편과 좋은 집에서 아이들과 환하게 웃기를 기대했는데…. 어쩌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 첫사랑의 얼굴을 본 것처럼 불편하다. 맥커리는 몇 년이 지난 뒤 그녀와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성지 순례를 갈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했다.

사진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이 누군가가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생각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여기는 독자라면 맥커리의 30여 년간의 기록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가 인도 티베트 예멘 캄보디아 등을 취재하기 위해 언론사들과 주고받았던 서류들은 대부분 A4용지 1장짜리인데, 4분의 1 크기로 접혀 있다. 카메라맨들이 주로 입는 조끼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주름이 잡힌 종이들은 현장을 누볐던 지난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동과 아시아 저개발 국가를 기록한 사진들은 대체로 색깔이 좋다. 공기 오염이 덜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뛰어난 인쇄술도 비현실적인 색감을 연출하는 요소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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