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DJ 쇼? ‘괴짜 음악가’ 스퀘어푸셔 첫 내한무대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16시 16분


코멘트
어느 날 지구의 레이더에 성질 사나운 외계인들이 고성으로 다투는 소리가 잡힌다면 그건 이렇게 들릴지 모른다. 악보 위에 빽빽하게 널린 쇠로 된 64분 음표를 드릴로 분쇄하며 질주하는 듯한 노이즈, 노이즈.

영국 전자음악가 스퀘어푸셔(Squarepusher·40·본명 톰 젠킨슨)의 음악 말이다. 1994년 데뷔 이래 가장 별난 음악인 중 하나로 통하는 그는 지난해 세 대의 로봇에 연주를 시켜 녹음한 기발한 앨범 ‘Music for Robots(로봇을 위한 음악)’(QR코드)를 발표했다. 78개의 기계 손가락과 22개의 손발을 지닌 이들 로봇은 스튜디오와 무대에서 기타, 드럼을 연주했다.

공연을 위해 처음 내한한 괴짜 음악가 스퀘어푸셔를 18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그는 “인간의 창작에 느낌, 헌신, 열정 같은 정신이 깃든다는 신화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음악가이자 발명가인 그는 지난달 낸 신작 ‘Damogen Furies’ 제작에 스스로 개발한 프로그램 ‘시스템 4’를 썼다고 했다. 어렵고 복잡한 그의 음악 세계는 IDM(Intelligent Dance Music·지적인 댄스 음악)으로 분류되며 전자음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펼친 공연은 우주적이었다. 스퀘어푸셔는 이날 밤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열린 멀티미디어 콘서트 ‘세마하이파이 오디오비주얼 스펙타큘라’에 참여해 한국의 태싯그룹, 이디오테잎에 이어 90분간 무대를 꾸몄다. 그가 만들어내는 난폭하고 불규칙한 리듬과 노이즈에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동기화돼 명멸했다. 그건 배경 스크린은 물론 그의 얼굴을 가린 은빛 펜싱 마스크와 의상에도 투사됐다. 외계인의 DJ 쇼 같았다.

스퀘어푸셔의 음악은 빠른 전자음악이지만 불규칙한 리듬, 변칙적 진행 탓에 맞춰서 춤추기 어렵다. 우주인을 위한 댄스음악이라면 모를까. 그는 이런 음악이 어떻게 감상되길 원할까. “듣는 이가 춤추건 명상하건 상관없어요. 생각의 플랫폼이 되면 족합니다. 제 음악 앞에 몽유병자들이 됐으면 해요.”

그는 앙코르 30분을 초절기교의 베이스기타 연주로 채웠다. 6현 베이스로 그가 해내는 정교한 배음(倍音) 연주는 전자음악 못잖게 현란했다. 최근 세계 음악시장을 강타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열풍에 대해 그는 냉소했다. “자본을 쏟으면 뭐든 유명해져요. 상업엔 관심 없어요.”

어쩐지 지구인 같지 않은 그에게 지구 음악의 미래를 물었다. “제 음악이 바로 미래 음악 아닐까요. 미래엔 이런 음악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로 그 상상력으로 음악을 만들거든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