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커다란 배 타고 100년 전 루이뷔통의 과거 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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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 시리즈2’ 전시회

루이뷔통 패션쇼의 뒷무대를 파노라마 형태로 표현한 사진을 배경으로, 루이뷔통이 올해 봄·여름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들이 놓여 있다. 패션쇼 뒷무대는 새벽 5시에 도착해 오전 10시 무대에 서기까지의 긴박한 준비 과정을 보여준다. 루이뷔통 제공
루이뷔통 패션쇼의 뒷무대를 파노라마 형태로 표현한 사진을 배경으로, 루이뷔통이 올해 봄·여름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들이 놓여 있다. 패션쇼 뒷무대는 새벽 5시에 도착해 오전 10시 무대에 서기까지의 긴박한 준비 과정을 보여준다. 루이뷔통 제공
“커다란 배를 타고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화면 속 남자인 듯 여자 같은 몽환적인 느낌의 청년은 반복해서 속삭였다. 이제 여행을 떠나자고. 나지막이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는 사람들을 어두운 통로로 안내했다. 열 발자국 내딛자 홀로그램이 발길을 잡았다. 100여 년 전 긴 여행을 떠날 때 들곤 했던 트렁크의 형상들이 펼쳐졌다. 트렁크들은 1854년부터 만들어진 루이뷔통의 그것들이었다.

1일부터 서울 종로구 ‘광화문 D타워’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주제로 ‘루이뷔통 시리즈2’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루이뷔통의 과거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여행용 가방이다. 루이뷔통의 창립자 루이 뷔통은 공방에서 만든 트렁크로 세상에 루이뷔통 브랜드를 알렸다. 트렁크는 타이타닉 같은 큰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시리즈2 전시회에서 트렁크를 홀로그램으로 형상화해서 루이뷔통의 과거를 표현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트렁크가 상징하는 루이뷔통의 정신은 ‘여행 정신’이다. 루이뷔통은 미지의 공간으로 떠나는 탐험을 즐기는 정신이 곧 창조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루이뷔통재단미술관이 배 모양을 본떠 설계된 것도 배가 담고 있는 여행과 탐험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루이뷔통 패션쇼에 서는 실제 모델을 그대로 본뜬 마네킹이 루이뷔통의 올 시즌 가방을 들고 있다.
루이뷔통 패션쇼에 서는 실제 모델을 그대로 본뜬 마네킹이 루이뷔통의 올 시즌 가방을 들고 있다.
여행 정신에 바탕을 둔 도전적인 창조

루이뷔통은 회사의 과거와 정신을 상징하는 트렁크를 올해 새롭게 재창조했다. 트렁크 디자인의 여성용 핸드백을 만들어낸 것이다. ‘작은 트렁크’라는 의미의 ‘프티트 말(Petite-Malle)’이 관람객들의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아이템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루이뷔통의 장인은 전시장에서 직접 프티트 말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했다. 관람객들의 호기심어린 눈빛 속에서도 장인은 재료를 하나하나 붙이며 작업에 열중했다. 프티트 말은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이지만 제작까지는 100단계 이상을 거쳐야 한다. 작업에 몰두하던 장인에게 ‘가방을 만들 때 무슨 상상을 하며 만드는지’ 물었다. 레드 카펫 위를 걷는 도도한 여성의 모습, 나들이에 나선 발랄한 여성 등을 떠올리던 기자에게 장인은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저 작업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허세 가득한 생각에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작업을 시연하는 공간 옆에는 대형 스크린 세 개를 설치해 루이뷔통의 의류 가방 신발을 만드는 과정을 각각 소개했다. 영상에서는 천을 자를 때 나는 ‘사각사각’ 같은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루이뷔통 작업장에서는 음악도 라디오도 틀어 놓지 않는다. 오직 작업에만 집중하기 위함이다. 루이뷔통 관계자는 “제품을 만드는 모습이 정적이라 관람객들이 별 흥미를 못 느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다. 세 개의 영상을 하나씩 다 보고 가는 관람객이 꽤 많다”고 말했다.

루이뷔통의 여행 정신을 표현한 모델과 제품 사진들.
루이뷔통의 여행 정신을 표현한 모델과 제품 사진들.
장어 가죽으로 발현한 창의력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지나고 나면 눈이 부실 정도의 하얀 벽면과 하얀 마네킹들이 반긴다. 관람객이 처음 마주하는 석고상은 지난해 루이뷔통 파리 패션쇼에 섰던 모델 마르터 메이 판 하스터르의 신체를 똑같이 재현해 냈다. 그것을 비롯한 마네킹 손에 들려진 것들은 대부분 올해 선보인 신제품 가방이었다. L과 V가 겹쳐진 루이뷔통의 로고를 가방을 열고 닫는데 쓰는 일종의 버튼으로 활용한 제품이 눈에 띄었다. L자를 돌려 V자와 맞춰지면 가방을 열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루이뷔통이 올해 선보인 의류에서 주목 받는 것은 장어 가죽으로 만든 옷이었다. 장어 가죽의 무늬를 그대로 살린 원피스 재킷 등은 가벼우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줬다. 얇은 두께의 장어 가죽은 몸에 딱 붙으면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여름철 여성 의류에 적합하다는 것이 루이뷔통의 설명이다. 이번 신제품은 루이뷔통의 여성 패션 수석 디자이너인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창의력이 발현된 결과물이다. 2013년 11월부터 루이뷔통 수석 디자이너가 된 게스키에르는 “루이뷔통은 전통을 이어나가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결과물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서 눈길을 끌었던 또 하나의 공간은 패션쇼 뒤편의 준비 과정을, 사진을 이어붙인 파노마라 형태로 표현한 곳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루이뷔통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모델이 오전 5시에 도착해 화장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고 포즈를 점검하며 최종적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과정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다. 이번 루이뷔통 시리즈2 전시회는 당초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관람객 반응이 좋아 25일까지 연장한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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