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숙자의 고통스런 삶과 천황, 르포기사처럼 생생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3일 1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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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우에노역 공원 출구
유미리 지음·김미형 옮김
186쪽·8500원·기파랑

“가난만한 죄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죄악에 대한 벌이 가난이고 벌을 못 이겨 또 죄악을 저지른다,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그게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41쪽)

지지리 복도 없는 인생을 산 남자는 일본 도쿄 JR우에노역에서 노숙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어서도 혼령이 돼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남자의 삶은 1933년 같은 해 태어난 천황의 삶과 대비된다. 1960년 라디오 아나운서가 쾌활한 목소리로 황태자 출산 소식을 전할 때 그는 난산으로 위험에 빠진 아내를 보고도 산파를 부를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렵게 태어난 아들은 빚쟁이에게 쫓기는 아버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부터 배워야 했다.

남자는 1964년 열린 도쿄올림픽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형편이 나아질 만 하면 아들이, 아내가 죽는다. 이제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그는, 부푼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할 때 첫 발을 디뎠던 우에노역으로 가서 노숙자로 생활한다. 그리고 “도전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방황하거나, 그런 것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천황을 먼발치에서 부러운 듯 바라볼 뿐이다.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 씨는 2006년 한겨울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를 몰아내는 정부의 ‘수색작업’을 밀착 취재했다. 일본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다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노숙자의 인생,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료수 캔과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는 그들의 삶이 르포기사처럼 상세히 묘사돼 있다. 작가는 노숙자들을 취재한 데 이어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직접 가서 임시재해방송국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밴 집필 동기가 ‘한 노숙자의 비참한 일생’이라는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쓰나미로 집이 쓸려나가거나, 집이 (방사능 누출의) ‘경계구역’ 안이라 피난생활을 해야만 하는 분들의 고통과,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후 돌아갈 집이 사라진 노숙자 분들의 고통이 내 속에서 서로 대립했고, 양쪽의 아픔을 잇는 이음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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