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 “살아 결코 멈출 수 없는… 詩란, 내게 숨결 같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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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50년, 열세 번째 시집 ‘살 흐르다’ 펴낸 신달자 시인

신달자 시인의 거실 벽에는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자필로 쓴 문장이 걸려 있다. 그는 “삶은 가파른 것이어서 마음을 탁 놓을 수가 없다. 평탄해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면 나는 시를 못 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신달자 시인의 거실 벽에는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자필로 쓴 문장이 걸려 있다. 그는 “삶은 가파른 것이어서 마음을 탁 놓을 수가 없다. 평탄해서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면 나는 시를 못 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수서역에 내려서 시인이 11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는 길은 그의 새 시집을 갈피갈피 디디며 가는 것과 같다. 수서역 사거리에서는 ‘집집마다 요구르트를 배달하고/아침에서 저녁까지 아파트 귀퉁이에 종일 서서/여린 미소로 남은 것들을 팔고 있는’(‘저 여자!’) 한 여인이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활자로 새겨져 있던 지하 스타벅스와 소박한 삼익떡집도 목격하게 된다.

신달자 시인(71)이 열세 번째 시집 ‘살 흐르다’(민음사)를 펴냈다. 1964년 여성지 ‘여상’을 통해 등단한 뒤 반백 년 동안 쉼 없이 시를 써온 그다. 서울 강남구 광평로 자택에서 5일 시인을 만났다.

“이번 시집에는 정직하게 내가 들어 있다. 가식 없는 내 이야기,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딸들, 주변의 이야기. 이전의 시집들에서는 뭔가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짧은 이제는, 그저 순전한 나를 보여주는 시편을 선택하게 되더라.”

시인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다가 2000년 떠나보냈다. ‘바람 서늘한 날 당신 내 무릎 베고 눈감았다 (중략) 당신 가고 나 생각보다 찬란하지 않았어 여보……/쭈뼛/살얼음이 입속에서 어슥어슥 시려서//그렇게 혼자 버석거렸어 여보’(‘10주기·週忌’)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던 그는 산 옆으로 가서 살아보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대모산 근처인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깨질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적요. ‘외로움은 온몸의 관절을 펴 수평선처럼 그 끝이 없었다’(‘외로움도 스트레칭을 한다’), ‘밤새 내리고 아침에 내리고 낮을 거쳐 저녁에 또 내리는 비/적막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그래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계속 보여주는구나’(‘내 앞에 비 내리고’)

“남편이 먼저 간 다음에 혼자 식당에서 밥을 못 사 먹었다. 다른 손님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것 같아서. 결국은 집에 와서 라면을 끓였다. 그때 라면 참 많이 먹었다.”

식당을 기웃거리다 발걸음을 되돌리길 수차례, 시인은 이제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서 혼자 곧잘 식사를 한다. 실은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가정백반은 집에 없고/상가 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집에는 가정이 없나/밥이 없으니 가정이 없나?/혼자 먹는 가정백반 (중략) 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기웃기웃 가정으로 돌아가는데//대모산이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흘쩍이는 저녁’(‘가정백반’)

50년 동안 시를 써온 시인에게 시는 무엇일까. “시는 내 숨결이다. 숨결은 멎어선 안 되는 것이다. 응급환자의 숨결이 아니라 고르고 건강해서 다른 이들에게 고요하게 다가갈 수 있고, 살아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숨결이 나에겐 시다.”

시인은 오전 6시 즈음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고 했다. 창 밖의 어둠은 청색. 서서히 색이 엷어지면서 밝아지는 그 새 아침은 시인을 늘 설레게 한다. 그 시간, 시인은 시를 쓴다.

“긴 세월 동안 불행했을 때도 행복했을 때도 시를 옆에 잠깐이라도 제쳐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하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잘했다기보다는 수고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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