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큐트 비틀’ 열창에 돔안은 환호와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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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日오사카 공연 현장

12일 오후 9시 51분,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3만5000명 수용) 객석에 눈부신 조명이 다시 들어왔다. 2시간 36분 만이었다. 미소 짓는 관객들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꿈을 꾼 듯했다. 3일 프로야구 일본시리즈 최종전에서 지진 피해 지역인 센다이 시의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우승하던 순간과 비슷할까. 패자가 없다는 건 달랐다.

오사카 시 니시 구에 위치한 교세라돔 주변은 공연 시작 3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인근 돔마에 역과 다이쇼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혼잡했다. 이날 ‘경기’는 비틀스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71)가 11년 만에 연 일본 순회공연(11∼21일)의 둘째 날 무대였다.

매카트니는 링고 스타와 함께 비틀스의 유이한 생존 멤버. 그가 고령이라 아시아 쪽 공연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면서 오사카(교세라돔 2회), 후쿠오카돔(1회), 도쿄돔(3회)의 6회 공연 티켓 27만 장이 일찌감치 매진됐고, 암표는 한때 장당 700만 원대까지 호가했다. 다이쇼 역에서 만난 50대 주부 사치코 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유 아 베리 러키!”

21일까지 이어질 매카트니의 순회공연에 즈음해 일본 전역에는 비틀스 열풍이 불고 있다. 공연 첫날인 11일 오리콘 일간 CD 차트에서는 비틀스의 새 라이브 앨범 ‘온 에어-라이브 앳 더 비비시 2’가 레이디 가가의 신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3위(‘라이브 앳 더 비비시’)와 6위(폴 매카트니 신작 ‘뉴’)에 차례로 비틀스 관련 음반이 포진했다. 매카트니는 이번에 오리콘 차트 최고령 톱10 진입(최고 2위)과 도쿄돔 최고령 공연 가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오후 6시 45분, 돔 특설 무대 양쪽의 초대형 스크린에서 비틀스와 매카트니의 역사를 담은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올라갔다. 7시 13분, 화면이 매카트니의 전매특허인 호프너 베이스 기타 형상에 멈췄다. 3만5000 관객이 일제히 기립하자마자, 7시 15분, 돔 전체가 암흑에 뒤덮였다.

무대 쪽이 밝아지며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멘 매카트니가 왼쪽에서 걸어 나왔다. 기타 2대, 건반 1대, 드럼 1대를 포함한 5인조 편제를 갖추자마자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히트 곡 ‘에이트 데이스 어 위크’부터 불렀다.

객석은 1960년대로 돌아간 듯 끓었다. “나이가 많아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는 풍문과 달리 그는 노래방에서 웬만한 남자도 목에 핏대를 세워야 올리는 옥타브 위 솔∼라까지 잘 소화했다. 음정도 정확했다. 호흡이 달려 목소리가 가끔 떨리기는 했다. 신곡 ‘세이브 어스’까지 부른 매카트니는 오사카 사투리로 객석을 뒤집어 놨다. “마이도(안녕하세요), 오사카! 다다이마(다녀왔습니다)!!”

매카트니는 2시간 45분간 연주한 39곡 중 25곡을 비틀스 시절 노래로 꾸몄다. 쉴 만하면 ‘올 마이 러빙’이, 지칠 만하면 ‘더 롱 앤드 와인딩 로드’가 터져 나오니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흥겨운 로큰롤 위주였지만 사이사이 눈물샘을 자극해 더 야속했다.

그는 “이 노래를 (동일본) 지진 희생자에게 바친다”며 ‘렛 잇 비’를 불렀고,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며 ‘리브 앤드 렛 다이’를 연주했다.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1943∼2001)의 곡 ‘섬싱’을 부른 뒤 돌아선 매카트니는 스크린에 비친 거대한 해리슨의 얼굴을 향해 두 손을 든 뒤 그를 한참 우러러봤다.

화물기 2대로 공수했다는 무대 장비는 첨단이었다. ‘리브…’의 중반부, 빠른 악곡이 터질 때는 무대에서 20개의 불기둥이 치솟았고, 몽환적인 비틀스 후기 곡 ‘빙 포 더 베니피트 오브 미스터 카이트!’에선 현란한 레이저와 조명이 박자에 맞춰 돔 전체를 감쌌다.

작은 우쿨렐레로 ‘섬싱’을, 통기타 한 대로 ‘예스터데이’를 연주하며 아기자기한 무대도 병행했다. ‘큐트 비틀’이란 별칭답게 “곤바 니혼고 간바리마스(오늘밤 일본어 노력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눈을 찡긋댔다. 그의 귀여운 무대 매너가 우수에 젖은 관객을 다시 웃겼다. 육중하고 날카로운 음향과 연주는 비틀스의 30∼40년 후배인 오아시스나 아크틱 멍키스에 못잖았고 헤비메탈의 시조로도 꼽히는 ‘헬터 스켈터’(비틀스)에서 정점을 찍었다. 매카트니 자신도 호프너 베이스와 에피폰 카지노, 깁슨 레스폴 기타를 오가며 꽤 정교한 연주를 펼쳤다. 그랜드 피아노 타건에 실리는 손힘은 엘턴 존 못잖았다.

앙코르 전 마지막 곡은 ‘헤이 주드’였다. ‘나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 헤이 주드’의 반복구를 자신은 8번 부르고 12번은 관객에게 무반주로 넘겼다. 대형 스크린으로 관객들은 웃는 듯 우는 듯 손 흔들며 그 멜로디를 합창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봤다. 대단원은 ‘슬픔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건 결국 사랑’이라고 노래하는 비틀스의 사실상 최후 앨범 ‘애비 로드’의 마지막 곡 ‘디 엔드’였고, 대형 스크린 위로 거대한 태양의 영상이 떠오르며 공연은 끝이 났다.

매카트니는 방일 전 아사히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음악으로 일본인들을 달래 주고 싶다”고 했다. 공연 뒤 만난 니시무라 요시이 씨(35)는 “일본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매카트니는 그걸 모두 무색하게 할 밝은 에너지를 줬다”고 했고, 데라자와 히데키 씨(65)는 “폴 덕에 ‘원더풀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사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폴 매카트니#교세라돔#비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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