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대중이 나이 든 가수 외면? 나이 든 가수가 대중 외면한거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광화문광장에서 11집 ‘마이 러브’ 신곡발표회 연 이승철 ‘고깃집 뒤풀이’

가수 이승철은 고양이를 닮았다. 높은 목소리로 노래 마디 사이를 유연하게 타고 넘는다. 그는 “내 얼굴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콧등”이라고 했다. 루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이승철은 고양이를 닮았다. 높은 목소리로 노래 마디 사이를 유연하게 타고 넘는다. 그는 “내 얼굴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콧등”이라고 했다. 루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은 벌이면 해결돼! 내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거든!”

19일 오후 9시 30분 서울 세종로의 고깃집.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이승철(47)이 슬그머니 말을 놨다. “이모! 여기 소주 열 병 주세요.”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이날따라 더 달떴다. “28년 가수 하면서 오늘처럼 감동적인 무대는 없었어.” 이승철이 좌중에 건배를 제의했다. “어서와. 이런 술자리는 처음이지?”(‘슈퍼스타K’에서 이승철이 해 유행한 말)

이날 오후 8시부터 이승철은 11집 ‘마이 러브’의 신곡 발표회 ‘어서와’를 열었다. 장소는 서울 광화문광장. 단일 가수의 콘서트에 이곳이 문호를 연 것은 처음이다. 그는 특설무대에 올라 경복궁 광화문을 등지고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동상을 바라보며 노래했다. 퇴근길 시민 5000명이 몰려들었다. 네이버와 엠넷으로 생중계도 됐다.

청와대에 든든한 지원군이라도 있는 걸까. 어떻게 그 광장을 독점…? 술잔을 들던 이승철이 짙은 눈썹을 꿈틀댔다. “전혀. 서울시청, 종로경찰서, 수도방위사령부 승인까지 다 받아야 가능한 곳인데. 스태프들이 동분서주했지. 2004년 7집 발표 콘서트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했는데, 이번에 공연을 청와대 쪽에 신고하면서 기막힌 인연이라고 생각했어. 그때 박 대통령과 듀엣 곡을 부르려던 계획은 무산됐지만 당시 히트곡(‘긴 하루’)과 이번 신곡(‘마이 러브’) 작곡자(전해성)가 같거든.”

29년 전, 광화문 앞에는 열아홉 살의 이승철이 있었다. 대신고(종로구 행촌동) 3학년생. 학업을 포기하고 종로를 어슬렁대다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그룹 부활의 보컬이 됐다. 고운 외모와 미성, 가창력을 갖춘 그는 ‘희야’ ‘마지막 콘서트’ ‘회상’으로 단숨에 10대의 우상이 됐다.

1988년 솔로로 독립해 2009년 10집까지 내며 성공한 그는 요 몇 년 새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더 자주 얼굴을 비쳤다. 물밑에서 이승철은 심사평만큼 독하게 음악을 벼렸다. 신작에 몇 년 전부터 미국 뉴욕과 서울 홍익대 앞에서 유행하고 있는 포크 록, 힙합의 요소까지 도입했다. ‘그런 말 말아요’ ‘런 웨이’에 나오는 배경 보컬의 ‘워어어어∼’ ‘호오∼’는 콜드플레이, 마룬5, 카니에 웨스트도 연상시킨다. “듣는 사람이 함께 외치면서 에너지를 발산할 공간을 준 거지. 요즘은 그런 노래가 필요한 시대인 거 같아.”

이승철은 신곡 ‘런 웨이’를 해외에도 발표한다고 했다. 자신감이 지나치다. “아니. 전해성 작곡가랑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대안학교) 성지고등학교 학생들한테 그 노래의 합창 버전을 가르치고 있어. 폴란드 토룬에서 열리는 국제합창경연대회(9월)에 참가시키는 게 최종 목표. 어깨 처진 아이들한테 꿈을 좀 심어주고 싶어.” 2011년 경북 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들을 지도해 공연 무대에 올렸던 그가 이번엔 ‘판’을 더 키운 것이다.

18일 공개하자마자 화제가 된 ‘마이 러브’ 뮤직비디오에도 ‘공감의 에너지’가 담겼다. 수원시향 연주자 커플의 실제 프러포즈 과정을 ‘몰래 카메라’식 영상에 담았다. “여친한테는 보여주지 마. 눈만 높아지니까.” 정작 자신은 “야, 결혼이나 하자”고 한마디 던진 게 프러포즈의 전부였다고 한다. 옆에 앉은 부인 박현정 씨가 때마침 이승철의 바지에 물을 쏟는다.

“결국은… 다 핑계야. 그동안 대중이 나이 든 가수를 외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이 든 가수들이 대중을 외면해온 건지 몰라. 계속 연구하고 노력하면 아이돌 그룹보다 더한 공감을 끌어낼 수 있겠지. 오늘 역사의 공간에서 현주소를 찾은 것 같네. 자, 한 잔 더 합시다!”(이게 도대체 몇 잔짼지.)

이승철은 다음 달 12, 1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순회공연에 돌입한다. 10월에는 미니앨범 11.5집을 발표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이승철#마이 러브#신곡발표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