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故최성일 씨 1주기…‘기획회의’ 투병일기-저서 등 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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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2004년 3월 11일)
애의 이쁜 짓이 귀엽다… (2005년 6월 3일)
2년 반 남았다, 슬프다… (2008년 3월 20일) … 내달 4일 추모 ‘북 콘서트’

고 최성일 씨가 딸 서해 양에게 남긴 편지.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미안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신순옥 씨 제공
고 최성일 씨가 딸 서해 양에게 남긴 편지.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미안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신순옥 씨 제공
“아빠의 정신연령이 (다섯 살) 서해와 같아지면 서해와 더 잘 통할 수도 있겠지. 아빠가 바보가 된 것은 서해를 곁에서 더 많이 지켜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 아빠의 오른팔에 힘이 남아 있을 때 서해를 번쩍 들어 안아주고 싶다.”

지난해 7월 2일 44세의 젊은 출판평론가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6년 출판전문잡지 기자로 시작해 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평생을 책에 헌신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출판계를 깊은 슬픔에 빠지게 했다. 그는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테마가 있는 책 읽기’ ‘베스트셀러 죽이기’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등을 펴낸 고 최성일 씨다.

출판 전문 잡지 ‘기획회의’ 최근호(322호)는 고인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글쓰기, 저서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 특집 기사를 선보였다. 특히 고인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2004년부터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2010년까지 쓴 일기를 실었다. 여기에는 투병 과정에서 느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외로움, 아내 신순옥 씨(42)와 남매 서해(12)와 인해(8)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담겨 있다.

최 씨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둔 2004년 3월 11일 일기에서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손 불구, 언어장애, 추상적 사고 불능이 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바보 멍청이라도 좋다”고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큰 짐을 지워 안타깝고 미안하다. 혹여 내가 반편이 되더라도 버리지 말고 잘 돌봐주게”라고, 딸 서해에겐 “(수술을 받기로 한) 아빠의 선택을 지지하리라 믿는다. 씩씩하고 건강한 사람이 됐으면 한다”는 당부의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이후에도 아내와 자녀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시했다.

고 최성일 씨
고 최성일 씨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는 거다. 인해의 ‘이쁜 짓’이 아주아주 귀엽다. 그렇다고 이런 걸 비디오카메라 같은 데 담아두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왜냐면, 행복은 흘러가는 것이어서. 그런데 나는 행복하다.”(2005년 6월 3일 일기)

“악몽을 꾸다. 순옥이(아내)가 이혼을 하잔다. 몹시 두려웠다. 깨어서 꿈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오늘이 결혼기념일인 것도 몰랐다. 만 10년이다. 케이크라도 하나 사올까? 순옥이가 됐단다. 점심 때 보니 순옥이가 센스가 다 있다. 크림을 덮지 않은 케이크 모양의 빵을 사둔 모양이다.”(2007년 8월 31일 일기)

고인은 8년간 여러 차례의 큰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반복하면서도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이 악화된 후인 2008년 3월 20일 일기에서는 끝없는 불안과 외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힘겹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내가 멀쩡한 줄 아는 것 같다. 나, 이래 뵈도 ‘중증환자’인데 말이다. 다소 우스운 것은 ‘중증환자’의 기한이 있다는 거다. 이년 반 정도 남았나. 슬프다. … 하소연할 곳이, 마음 둘 곳이 없어 글로 적어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눌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지경이 서글프다.”

기획회의 322호
기획회의 322호
‘기획회의’ 발행인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치열하게 책을 읽고 고민하며 글을 썼던 그가 출판계에 남긴 유산은 매우 크다. 생전에 고인과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의 마음으로 이번 특집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북스리브로 홍대점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북 콘서트가 열린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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