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부모에게 새 삶을 열어주는 출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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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아이를 갖는가?/크리스틴 오버롤 지음·정명진 옮김/372쪽·1만5000원·부글북스

임신과 출산은 본능일까, 종족 보존을 위한 의무일까. 저자는 “아이를 갖는 건 아이를 통해 부모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이라며 “절대로 아이를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임신과 출산은 본능일까, 종족 보존을 위한 의무일까. 저자는 “아이를 갖는 건 아이를 통해 부모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이라며 “절대로 아이를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사람들은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왜 아이를 가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갓 임신한 여성 또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자랑하는 아빠에게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임신과 출산은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 즉 섹스처럼 인간 본성에 입력돼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두 자녀를 둔 엄마인 저자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아이를 낳아야 할 갖가지 이유를 늘어놓는다. 종족 보존의 중요성, 국가에 대한 의무, 부모에게 안겨줄 경제적 심리적 혜택, 인간 멸종에 대한 우려, 종교적 소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모두 근거나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임신과 출산, 양육을 온몸으로 겪어야 하는 여성, 그리고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태어난 아이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경우에도 출산의 의무 같은 건 없다고 단언한다. 출산을 의무화할 경우 여자나 아기가 종족이나 사회를 위한 한낱 ‘도구’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출산에 대한 ‘신화’를 깨뜨린 후 저자가 제시하는 출산의 이유는 조금 허무하다. 의무는 아니지만 실천할 경우 도덕적 윤리적으로 좋은 일이 있는데, 출산이 바로 이에 해당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는 신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임신과 출산이 부모에게 새 삶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출산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불치의 병에 걸린 아이를 위해 유전적으로 비슷한 동생을 낳는 ‘구세주 형제’ 출산은 동생을 수단화하는 것이기에, 장애아 낙태는 장애가 있음에도 그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마저 없애버리는 것이어서,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저 결혼하고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갖는다는 식의 자세로는 훌륭한 아이를 키워내지 못한다. 예비 부모가 출산의 이유를 명확히 하고, 스스로 양육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아이는 놓치지 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신을 믿듯 믿으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이를 가진 한 지인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신은 없는 것 같고, 아이는 안 낳는 게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아기를 가진 후 그 존재에 대해 그저 믿게 됐다”며 이 책의 논지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출산 파업’ 중인 한 여성의 토로가 더 절절히 와 닿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임신과 출산은 암컷의 DNA에 새겨진 본능인데, 이를 거스르는 삶을 살려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출산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좋으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하나의 결론을 향해 구불구불한 100리 길을 돌아간 느낌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책의향기#인문사회#우리는왜아이를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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