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명대의 운하길…’ 펴낸 서인범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조선 관리 최부 리더십에 반해 그가 지나간 中 2500km 밟았죠”

한길사 제공
한길사 제공
중년의 사학자가 장도에 오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창궐한 신종플루가 말썽이었고 시간도 경비도 부족했다. 대입 수험생과 중학생이던 두 딸이 적금을 깨 500만 원을 내놨고 따가운 눈총으로 여행을 반대하던 아내마저 지는 척하며 200만 원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700만 원을 들고 2009년 11월 중순부터 31일 동안 최부(崔溥·1454∼1504)의 ‘표해록(漂海錄)’에 나온 길을 따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베이징(北京)에 이르는 2500km를 답사한 결실이 책으로 나왔다. 서인범 동국대 사학과 교수(52·사진)의 ‘명대(明代)의 운하길을 걷다’(한길사). 표해록은 조선 성종 때 문신 최부가 지방관으로 제주에 머물다 부친상을 당해 고향인 전남 나주로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한 경험을 기록한 여행기다. 최부는 항저우에서부터 조운로(운하길)를 따라 베이징에 이르렀고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명대사(明代史)를 전공하고 2004년 표해록을 번역해 펴낸 서 교수는 ‘명사(明史)’ 식화지(食貨志) 조운(漕運) 부분을 강독한 뒤 명대의 조운로와 표해록의 길이 겹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최부의 길을 뒤이어 밟기로 결심했다.

서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자에겐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큰 인연”이라며 “표해록에 나타난 최부의 해박한 지식과 유학자로서의 꼿꼿한 기개, 강력한 리더십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광대한 중국의 역사가 무색하게도 소중한 유적과 유물을 소홀히 관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움도 컸다. “지닝(濟寧) 시의 분수용왕묘 안에 들어갔더니 청 황제의 비문이 깨진 채 땅에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더군요. 쉬저우(徐州)에 자리한 능묘인 구산한묘에서는 과거 합격자들의 편액을 쓰레기처럼 던져놨더라고요.”

서 교수는 최부 외에도 우리 역사 속 여러 인물의 흔적을 바지런히 따라갔다. 양저우(楊州)에 있는 최치원기념관에서는 신라 때 당나라로 유학 가 외국인 최초로 과거에 장원급제했던 최치원의 위대함을 되새겼다. 저장(浙江) 성 자싱(嘉興)에는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 의거의 배후로 지목돼 일본 당국에 쫓기던 시절 피난을 왔던 곳이 기념관으로 조성돼 있었다. 닝보(寧波)의 고려사신관(송나라 때 고려 사신을 접대할 목적으로 만든 영빈관)도 찾았다.

서 교수는 “이곳이 어떤 곳이고 얼마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팸플릿조차 없는 곳이 많았고 전시물이 빈약한 기념관들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 정보를 남겨 한국 관광객이 중국에서 우리 선인들의 모습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라도 물어물어 찾아갔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최고의 여행가이드였던 표해록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언젠가 그는 또다시 표해록을 배낭에 넣고 떠날 꿈을 꾼다. “시간이 부족해 미뤄뒀던 표해록의 나머지 여정인 베이징에서 압록강까지의 답사도 내년 여름쯤 마무리하려 합니다.”

두 딸과 아내에게 빌린 여비는 이자 10%를 쳐서 갚았다며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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