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얼굴 잘 뜯어고친 남자의 운명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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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못생긴 남자’ ★★★☆

심각한 독일 연극답지 않게 웃긴다. 할리우드 영화 뺨치게 장면전환도 빠르다. 4명의 배우가 가면만 바꿔 쓰듯 여러 배역을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해내면서 통념을 보기 좋게 배반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레떼 역의 배우 오동식 씨의 외모는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주변 인물들의 묘사만으로 천하의 추물이 돼버린다. 평생 못생겼다는 말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레떼는 “자네의 외모에 대해 내가 꼭 말을 해야 하나”란 말을 듣고 반신반의한다. 그러다 “그래요, 당신은 못생겼어요”라는 아내(이슬비)의 말에 충격을 받고 성형수술을 결심한다.

문제는 그가 너무 못생겨서 그 수술이 ‘대형 공사’가 될 것이며 그 결과 레떼 스스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저하던 레떼는 “최악의 경우도 지금보단 나을 것”이란 의사와 아내의 말에 절망해 수술을 감행한다.

그 결과, 레떼는 관객의 입장에선 똑같은 얼굴인데 역시 주변 반응을 통해 ‘미남 종결자’로 등극한다. 그가 묵는 호텔방에는 하룻밤 25명의 여자가 줄을 서고, 그를 수술한 의사는 엄청난 명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그 황홀감을 만끽하던 레떼에겐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 전속 극작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40)가 2007년 발표한 이 작품의 매력은 코믹한 극 전개 못지않게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구조와 배우들의 연기력에 있다. 네 배우 중 정체성이 줄곧 같은 인물은 레떼뿐이다. 다른 세 배우는 같은 이름을 축(軸)으로 여러 인물로 회전 변신한다. 그것은 외모지향의 타자(他者)들이란 내적 차별을 찾을 수 없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며, 그들에게 놀아나는 레떼(나)가 정체성을 유지하는 길은 결국 자기 부정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신랄한 극적 장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지난해 초연돼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한국연극 베스트3와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상 신인연기상(이슬비)을 수상했다. 윤광진 연출. 2월 12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1만5000∼3만 원.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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